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사들이 선별수주에 나선 가운데 공공공사까지 수주를 포기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간 공공공사는 사업 성격이 도급이어서 공사비를 떼일 염려가 없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사업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지나치게 낮게 책정된 공사비로는 ‘할 수록 마이너스’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공공공사 입찰 참여를 꺼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위례신사선 우선협상대상자인 GS건설 컨소시엄(강남메트로)은 “서울시에 공사비 증액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위례신사선) 사업을 포기했다”고 공식 선언했다. 위례신사선은 총 길이 14.7km, 사업비 1조1597억원에 달하는 대형 공공공사다. 서울시는 재공고 또는 재정 투입을 통해 위례신사선 사업을 조속히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최근 건설 경기를 감안하면 새로운 사업자를 찾는데 또 다시 수 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공사비 문제로 공공공사 수주를 포기한 사례는 최근 들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국비 13조4913억원이 투입되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도 지난 5일 입찰에서 이례적으로 시공사들이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세종시에서 대보건설이 연면적 5만8111㎡ 규모의 행복도시4-2생활권 공동캠퍼스 18공구 현장 공사를 중단했다.
실제로 공공공사 규모는 줄어들고 있다. 조달청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건축 공사는 63건이며 총 공사비는 1조6065억원에 그쳤다. 이는 2022년 113건, 2조9755억원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불과한 수치다.
◇”할수록 마이너스지만… 놀 순 없으니 수주”
건설업계에서는 공공공사 수주 기피 현상에 대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된 공사비를 공통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A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변동성이 큰 대형공사에도 공공발주 금액 자체가 너무 낮게 책정돼 문제”라면서 “남는게 없는 수준이 아니라 일 할수록 마이너스라 견적이 내부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입찰 참여를 아예 안 한다”고 했다.
B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공공공사가 ‘에스컬레이션’이라고 해서 물가 상승분을 반영해주는 안전한 공사였는데, 이제는 그 폭이 상승분을 못 따라가는 것”이라며 “계산을 해 보면 원가가 넘어버려 감당하지 못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발주처를 관리하기 위해 마이너스가 나더라도 일부 손해를 보면서 전략적으로 수주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폭이 이제는 너무 많이 벌어져 이익이 안 나는 상황”이라고 했다.
C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참다 못해 입찰 때 애초에 항의성으로 가격을 입찰가보다 높게 던져버리는 경우도 있다”면서 “어차피 입찰은 안 될테지만 일방적으로 낮게 책정된 공사비를 높여달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대형사들은 공사를 ‘스톱’을 할 수 있지만 요즘 중견사들은 막말로 100만원 짜리가 나와도 1만원만 벌면 들어가겠다는 ‘울며 겨자먹기’ 상황”이라면서 “그마저도 공공 사업의 경우 실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예 들어오지 못하는 곳도 있어 실적 유지를 위해 수주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국토부 지원방안, 실질 체감 어려워”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건설경기 회복 지원방안’에서 ▲적정 공사비 반영 ▲대형공사 지연 최소화 ▲미분양 등 건설산업 리스크 최소화 ▲규제개선 등 민간애로 해소 등 방안이 나오기는 했지만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게 현장 이야기다.
D 중소건설사 관계자는 “이번 사안 가운데 기술형 입찰에서 떨어졌을 때 설계비 보전 비율을 높여주겠다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알맹이가 하나도 없다”면서 “선언적으로 공사비 현실화를 발표했을 뿐 우리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체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공공공사 공사비 현실화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2000년 이후 고정된 적격심사제 낙찰하한율을 상향하고 불합리한 공사비 삭감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건설협회는 지난 4월 말 조달청과 간담회를 갖고 이같은 요구사항을 전달하기도 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공공공사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들어가고 일부 법령 개정 사항도 있는 등 문제로 단시간에 애로사항이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업계에서도 인지하고 있다”면서 “재료비나 인건비, 외주비 등 현실화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정부와 국회 등과 조율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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