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저소득자에게 최대 100만원을 빌려주는 ‘소액생계비대출’에 쓸 예산을 편성해달라고 기획재정부에 요청했다. 현재는 은행이 낸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인데, 생애 한 번 받을 수 있었던 소액생계비대출을 ‘무제한’으로 확대하면서 추가 재원 마련이 시급해진 상황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말 소액생계비대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해 기재부에 제출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해 3월 소액생계비대출 출시 후 1400억원가량을 지원했는데, 올해 예상 집행 규모 수준을 내년 예산에 편성해줄 것을 기재부에 요청했다”고 했다. 금융위는 지난해에도 기재부에 1500억원 규모의 소액생계비대출 예산을 신청했지만, 전액 삭감됐다.
지난해 3월 출시한 소액생계비대출은 신용 평점이 하위 20%이고, 연 소득 3500만원 이하인 사람을 대상으로 급전을 빌려주는 제도다. 다른 정책금융상품과 달리 현재 금융사에 연체 중인 대출이 있어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50만원까지 빌려주고, 이자를 6개월 이상 성실하게 내면 50만원을 더 빌려준다. 금리는 연 15.9%지만, 온라인 금융교육을 이수하고 이자를 잘 갚으면 연 9.4%까지 낮아진다.
금융위는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침체로 불법 사금융에 노출돼 단돈 몇만원이 없어 신용 불량자로 전락하고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취약 계층이 늘고 있어, 소액생계비대출을 통한 금융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위와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소액생계비대출 출시 이후 지난 달까지 1년 2개월간 총 18만2655명이 1403억원을 지원받았다. 돈 빌린 사람의 92.7%는 신용 평점 하위 10% 이하였으며, 32.7%는 기존 금융권 대출 연체자였다. 연체율은 지난해 9월 8%에서 12월 11.7%, 올해 3월 15.5%, 5월 20.8%로 상승했다. 차주(돈 빌린 사람) 10명 중 2명은 원리금(원금+이자)을 제때 상환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제도 운영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저신용·저소득자, 다중 채무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 특성상 연체율은 더 오를 여지가 큰데, 재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소액생계비대출 재원은 은행권 기부금(500억원)과 금융사의 자발적 기부에 따른 국민행복기금 초과 회수금(440억원), 대출 회수금(60억원)이 전부다. 은행 기부금은 내년이면 모두 소진된다. 지난해 은행권은 서금원에 3년간 1500억원을 출연하기로 했는데, 추가 자금 지원 계획은 미정인 상태다.
필요한 자금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위는 오는 9월부터 소액생계비대출을 받고 전액 상환한 차주에게 횟수 제한 없이 낮은 금리로 재대출을 내주기로 했다. 대출 만기를 늦출 수 있는 기준도 완화했다. 현재는 이자를 성실히 갚았을 때만 5년 이내에서 만기를 늦춰주는데, 앞으로는 이자를 갚을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원리금 일부 납부를 조건으로 만기를 연장해 주기로 했다.
예산 편성에 반대했던 기재부가 마음을 바꿀지가 관건이다. 기재부는 서금원이 소액생계비대출을 직접 심사하고 실행하는 방식을 문제 삼고 있다. 다른 정책금융상품은 서금원이 차주의 보증을 서고, 은행이 대출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차주가 돈을 갚지 않아 생기는 손실만 서금원이 보전하고 있다.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간접 지원 방식이 적합하다는 것이 기재부의 입장이다. 연체율이 높아 지속 가능한 제도로 안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액생계비대출 제도는 연체자의 채무 조정을 지원하고 복지·고용 제도와 연계해 취약 차주의 다차원적인 문제 해결을 돕는 것이 특징”이라며 “지금의 방식은 복합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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