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김현일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장기간 지속된 업황 부진 속에서도 오히려 연구 개발(R&D)에의 투자 고삐를 더욱 조이고 있다. 비록 최근 실적은 좋지 못했으나, 반등을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대전환’을 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주요 석유화학업체들은 올 1분기 연구개발(R&D) 비용을 전반적으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LG화학은 1분기 R&D 비용으로 2710억원을 투입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400억원가량 늘어난 액수다. 롯데케미칼은 약 50억원 늘어난 347억원을 R&D 비용으로 사용했다.
금호석유화학은 1억원 늘어난 128억원을 R&D 비용으로 투자했다. 한화솔루션은 전년 동기보다 100억원가량 줄어든 535억원을 책정했지만 매출에서 연구개발비 비중은 3.06%에서 3.40%로 늘었다.
또한 설비투자비용(CAPEX)에도 아낌없는 지원을 한다는 계획이다. LG화학은 올해 설비투자에 4조원을, 오는 2025년에까지는 총 10조원을 쏟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롯데케미칼은 2조8000억원을 올해 투자비용으로 산정한 바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석유화학 기업들이 중동 지역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중국의 저가 수주 공세 등으로 3년여간 지속된 업황 부진에도 오히려 R&D 비용을 늘리는 추세라는 점이다.
LG화학은 1분기 석유화학 부문에서 31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롯데케미칼도 135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화솔루션 케미칼부문은 18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금호석유화학은 78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전년 동기 대비 40.5% 줄어든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석유화학 업계 전반에서 힘들더라도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할 시기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중국의 저가 수주 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범용 제품 비중을 줄이고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비중을 확대해야 하는 만큼, 연구 및 개발(R&D) 기술력 증강과 신제품 개발을 통한 사업 다각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의견. 한때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의 가장 큰 고객 중 하나였던 중국은 지난 2010년대를 기점으로 석유화학 분야 ‘자급자족’을 시작, 범용제품 공장을 대량으로 증설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현재는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의 큰손으로 성장했다.
중국의 공세에 범용 제품을 위주로 생산해 오던 국내업체들의 경쟁력 역시 자연스레 하락했다. 저렴한 제품의 범람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크게 떨어진 데다, 최근에는 중국에서의 수요 둔화까지 겹치며 부진이 장기화·심화된 것.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국내 석유화학사의 대중국 수출 규모는 약 935만톤(t)으로 전년(994만t) 대비 6% 줄었다. 2009년 50%였던 국내 석화 업계의 중국 수출 비중도 2023년 40%까지 줄었다.
한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은 이제 정밀화, 소품종 다생산해서 가치를 높여야 한다. 대량 생산이 아니라 다양하면서도 작은, 그런데 비싼 제품, 즉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대부분 범용 제품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는 지금 우리나라 석유화학의 숙제이기도 하고 많은 기업들도 이를 고민하고 있다. 외국의 기술을 사 오기도 하고 우리가 만들기도 하는 중”이라며 “저탄소 기조에 맞는 것도 해야 하고. 숙제가 많다. 하나만 해결하는 게 아니라 함께해야 할 게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역시 지난 5월 31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석유화학회의(APIC)에서 “지금 석유화학업계가 어렵긴 하지만 길게 보면 성장 기회는 반드시 있다”라고 말하는 한편 저탄소 기반,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기술 전환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APIC은 한국·일본·대만·인도·말레이시아·태국·싱가포르 등 7개국 석유화학 회사로 구성돼 있다.
또한 그 역시 “APIC 회원사들이 수익성과 기술력을 높이는 모델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라며 “아시아 석유화학업계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지, 저성장의 늪에 빠질지는 앞으로 몇 년간 APIC 7개 회원국의 대응에 달려 있다”라며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각각 어떤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을까.
LG화학은 태양광 분야를 중심으로 각광받는 친환경·고부가가치 소재인 폴리올레핀 엘라스토머(POE), 페인트에 들어가는 이소프로필알코올(IPA), 배터리·반도체 공정용 소재인 탄소나노튜브(CNT) 등 에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중 POE는 고무와 플라스틱의 성질을 동시에 갖춘 고부가 합성수지 소재로, 기존 태양광 패널용 필름으로 쓰여온 EVA(에틸렌초산비닐) 대비 발전 효율 및 수분 차단 기능이 좋다. 고밀도·고탄성·고강도의 특징으로 △범퍼 등 자동차 내외장재 △식품 포장재 △신발용 충격 흡수층 △전선 피복재 등 다양한 제품에 활용이 가능하다.
한화솔루션의 석유화학부문 계열사 한화토탈에너지스는 최근 POE의 원료인 선형 알파 올레핀(LAO) 제조를 위한 파일럿 공장을 착공해 궁극적으로는 POE 양산을 목표하고 있다. 앞서 이들은 340억원을 투자해 대산공장에 연 200톤(t) 규모의 POE 제품을 생산하고 주요 공정을 검사할 수 있는 설비를 구축한 바 있다.
롯데케미칼은 이차전지 소재 중 양극박, 동박, 전해액 유기용매, 분리막 소재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9월 리사이클 소재(PCR)와 바이오플라스틱 소재(Bio-PET)를 아우르는 친환경 소재 브랜드 ‘에코시드’를 출범하기도 했다.
금호석유화학은 합성고무, 합성수지, 탄소나노튜브를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주력 제품은 전기차용 타이어 등에 쓰이는 ‘솔루션 스타이렌 고무(S-SBR)’로, 친환경·고성능 타이어에 사용되는 특수 합성고무 제품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이미 지난 2022년 관련 시설 확장을 통해 생산능력을 12만3000톤(t)까지 늘린 바 있다.
백종훈 금호석유화학 대표는 APIC에서 만난 취재진에 “추세는 전기차로, 전기차용 타이어는 하중을 많이 받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합성고무를 써야 한다”라며 “별도로 기술을 개발하고, 필요하면 추가 증설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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