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한때 은행으로의 ‘역머니무브'(주식, 부동산 등 위험자산에서 은행 등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현상)’를 이끌었던 연 4% 이상의 정기예금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채, 코픽스(COFIX) 등 지표금리의 하락세, 그리고 대출금리 오름세의 억제를 위한 은행의 조치가 맞물린 결과다.
다만, 이같은 ‘고금리 예금의 실종’에도 불구하고 은행으로의 자금 유입은 더욱 속도를 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국내외 투자시장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데다, 하반기 금리 인하가 예측되면서 연 3%대 금리에 막차를 타려는 대기 자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이같은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히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가 현실화 될 경우, 당분간 시중은행에서 3%대 금리 예금을 찾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자금 유입 또한 상반기 중 확대될 전망이다.
5%는 옛말…자취 감춘 4%대 정기예금
11일 은행연합회와 은행업계에 따르면 한때 연 4%대를 넘어섰던 국내 은행권 내 정기예금 금리가 일제히 연 3%대 이하로 내려왔다. 다소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면 연 4%대 금리를 지원하는 상품도 자취를 감췄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실제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에서 제공하고 있는 총 35개 정기예금 상품은 모두 연 3% 이하의 금리를 지원하고 있다. 금리 수준은 각 은행별로 상이하지만 전체 상품의 금리는 연 3.3%~3.9% 수준에 형성돼있다.
우선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경우, 이미 올해 초부터 연 3%대 금리로 상품을 공급하고 있다. 이같은 흐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KB국민은행의 ‘KB스타 정기예금’은 연 3.45%,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과 하나은행의 ‘하나의정기예금’은 지난 10일 기준 연 3.5%(최고 우대금리 기준) 금리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WON플러스예금’은 연 3.55%의 금리(최고 우대금리 기준)가 적용된다.
이미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연 3%대 금리를 지원하고 있다.
비교 범위를 전체 은행권으로 확대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은행연합회 공시 대상 중 가장 높은 금리(최고 우대금리 기준)는 NH농협은행의 ‘NH고향사랑기부예금’, Sh수협은행의 ‘Sh첫만남우대예금’이 지원하는 연 3.9%다.
특히 ‘기본금리’에 해당하는 세후금리의 경우, 전체 비교 대상 35개 정기예금 중 연 3%대 금리는 △Sh수협은행의 ‘헤이정기예금(연 3.09%) △NH농협은행의 NH올원e예금(연 3.05%) △우리은행의 WON플러스예금(연 3.0%) 등 3곳에 불과했다.
이같은 정기예금 금리의 하락세에는 수신상품의 대표적인 지표금리인 ‘은행채’의 점진적 하락세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은행채(AAA‧1년물 기준) 금리는 3.575%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주 초(3.620%) 대비 0.05%p 가량 하락한 수치이자, 한 달 전인 지난 5월 7일(3.642%)와 비교하면 약 0.08%p 남짓 내려간 수준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미국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주요 지표금리 또한 하락세가 지속될 전망”이라며 “정기예금 금리도 자연스레 당분간 내림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금리 막차 타자” 은행으로 몰리는 자금
이같은 정기예금 금리하락에도 불구하고 은행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연 3%대 금리 열차의 막차를 타려는 대기성 자금이 몰리는 데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실제 지난달 말 기준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정기예금 잔액은 889조706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월 대비 16.8조원 가량 늘어난 수치다. 업계에서는 정기예금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이 이번 달에도 지속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미 정기예금 잔액이 900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다소 의아스럽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지난 3월과 4월, 5대 은행의 정기예금은 12조8000억원과 5000억원씩 각각 줄었다. 시장에서 연 4%대 금리가 자취를 감춘 1분기 말을 기점으로 정기예금 잔액 또한 감소세로 전환된 것이다.
하지만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 그리고 투자시장의 위축이 맞물리면서 정기예금 또한 증가세로 전환했다.
특히 은행업계에서는 사실상 연 3%대 중후반에 형성돼있는 정기예금 금리가 당분간 ‘고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화되면 연 2%대로 금리가 내려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에 대기자금을 묶어두려는 수요가 확대되는 것이라는 게 은행권의 해석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소위 ‘밸류업 프로젝트’로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감은 커지고 있지만 이밖에 가상화폐 등 여타 투자시장은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이라며 “향후 투자처 활성화를 기대하며 자금을 보관하려는 니즈가 정기예금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기예금 증가세, 지속가능성은 ‘낮아’
다만, 은행권에서는 이러한 정기예금으로의 자금 유입 현상이 오랜 기간 지속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밸류업 프로젝트’가 주식시장 활성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가상화폐 또한 언제든 ‘투심(投心)’이 몰릴 수 있는 예측 불가의 투자시장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은행권 내부에서도 과거와 같이 무리한 금리 인상을 통한 수신자금 확보 경쟁에는 선을 긋고 있다.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되는 저원가성 예금의 유입 가능성이 높은 데다, 대출 금리 관리 차원에서 수신금리 인상 자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말 기준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저원가성 예금’ 요구불예금 잔액은 614조1000여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12조원 가량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600조원 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투자시장이 개선되면 정기예금에서 저원가성 예금으로 이동하는 자금의 규모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지자체 금고처럼 대규모 저원가성 예금을 확보할 기회도 열려있어 정기예금 확보를 위한 금리 인상 등의 조치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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