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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외에 주주까지 확대하려는 정부의 상법 개정 추진이 국내 법체계에 합치하지 않으며 회사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0일 한국경제인협회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전제로 하는 이사의 충실 의무 인정 여부 검토’ 연구용역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는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진행했다.
연구에 따르면 회사와 주주 모두를 향해 충실 의무를 규정하는 것은 전 세계 법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규정이다. 미국과 영국·일본·독일·캐나다 등 주요국의 회사법을 보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은 회사에만 한정된다. 일각에서는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을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가 포함된 근거로 해석하나 보고서는 이에 대해 “회사 이익이 곧 주주 이익이라는 일반론적 문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본지 6월 8일자 1·3면 참조
정부는 최근 한국 증시의 저평가를 해소하는 등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규정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담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법무부 등과 공청회를 거쳐 의견 수렴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총리까지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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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교수는 개정 방향은 현행 민법, 상법 등 법체계와도 충돌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사는 상법 제382조 제2항에 따라 주주총회 결의로 회사가 임용한 회사의 대리인이다. 동법 제388조에 의해 이사의 보수 역시 정관이나 주총 결의로 회사가 지급한다. 민법상 위임의 법리와 수임인(대리인)의 선관 의무를 적용한 것으로 민법 및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가 위임계약을 맺은 회사에만 한정된다는 것이다.
기업 경영을 다양한 이해관계와 의견을 가진 모든 주주의 의견과 합치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법 개정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권 교수는 “소수주주는 배당 확대나 당장의 이익 분배를 요구하는 반면 지배주주는 여러 명목으로 이익을 회사에 장기간 유보할 것을 주장할 수 있다. 이런 주주 간 이해충돌을 이사가 합치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국내 경영학 및 법학계에서는 개정 방향이 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병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공학부 교수는 “이사가 주주 이익을 고려하도록 하는 것은 이미 상법에 반영돼 있어 이중 규제가 될 뿐”이라며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면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기업이 이익 창출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기술혁신을 막는 제도를 철폐하거나 경영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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