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의사가 공동 병원장으로 있는 병원은 처분 기간 요양·의료급여 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병원 개설자가 다수라도 이 중 1명이 자격정지를 받으면 병원 전체가 의료급여기관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껏 법원이 내려온 판결을 뒤집는 것으로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보험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의사 4명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상대로 낸 급여비용 불인정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사건을 지난달 30일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이 심리를 시작한 지 2년 5개월 만에 나온 판결이다.
앞서 A씨 등 의사 5명은 2015년부터 관절·척추와 관련한 진료·시술·수술을 하는 병원을 공동으로 개설해 운영했다. A씨 등이 공동 병원장으로 있는 이 병원은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상 요양기관이자 의료급여기관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병원장 중 1명이었던 B씨가 급여비용인 식대가산금 84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2016년 12월 3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보건복지부는 형이 확정된 이후인 2018년 8월부터 3개월 동안 B씨의 의사면허 자격을 정지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B씨의 의사면허가 정지된 기간 병원이 청구한 급여비용 약 6억원에 대한 심사를 거절했다. 공동 병원장인 B씨의 의사 자격이 없는 상황이라 병원은 급여비용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병원은 처분에 불복해 소송에 나섰다. B씨는 의사면허 정지 기간 진료를 보지 않았고, B씨를 제외한 다른 병원장들이 진료한 것에 대한 급여비용은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이들 주장을 받아들였다. 1심 재판부는 “B씨를 배제한 채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의료인에 의해 급여가 실시된 이상 급여 요건을 갖춘 것이다”라고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대법원은 B씨가 제재를 받았다면 병원 개설자가 다수라도 제재 기간 병원은 요양기관·의료급여기관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의료법상 의료기관에 대한 제재 요건을 의료기관 개설자로 정한 것은 진료비 청구권 행사 주체가 개설자이기 때문이지 진료비 거짓 청구행위 당사자인 개설자에게 한정시키려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제재의 필요성은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1인인지 다수인지에 따라 다르지 않고, 의료법에서도 이를 달리 규정하고 있지 않다”라고 판시했다.
특히 “다수가 공동으로 개설한 의료기관에서 한 명의 개설자가 진료비 거짓 청구행위로 처분을 받은 이상 ‘자격정지 기간 중 의료업을 할 수 없다’는 의료법을 병원에 적용하는 것은 나머지 공동개설자의 영업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지금껏 법원은 공동 병원장 중 1명의 자격이 박탈돼도 같은 병원 나머지 병원장들의 진료행위에 대한 급여비용 청구는 인정했다. 의사의 진료 행위별로 수가가 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제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공동 병원장 중 일부가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병원 운영엔 문제가 없다 보니 제재의 효과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의사 출신으로 의료법 관련 사건을 전문으로 수임하는 정이원 변호사는 “대법원이 제재 효과가 없어지는 점을 고려해 판례를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판결대로라면 대표원장 1명이 법 위반을 해도 잠시 휴직하고 다른 사람이 대신 의료행위를 하는 상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고, 영향을 받는 사건들이 꽤 있어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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