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거래량이 많은 곳이지만 위상에 비해 제도적 기반은 미비하다. 특히 기관이나 법인의 코인 투자 및 거래가 제한돼 있어 개미 투자자(개인 투자자)들의 힘만으로 시장이 움직여 시세 변동폭이 매우 크다.
일본은 정부 차원의 지원 아래 기관과 법인이 코인 물량을 소화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법)이 오는 7월 한국에서 시행되는 만큼 그림자 규제(규제당국의 비명시적인 변칙 규제)에 막혀 답보 상태인 법인 거래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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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상자산 거래… 개인만 되고 법인은 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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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법인과 기관들이 한국 가상자산 시장에서 소외돼 있다. 대부분 주요 선진국 규제 기관은 가상자산 거래와 관련해 개인과 법인 간 차이를 두지 않지만 국내에선 가상자산 거래소와 협업하는 은행들이 가상자산 거래를 위한 실명계좌를 법인에 발급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사업에 필요한 가상자산을 거래소에서 취득하거나 현금화할 수 없다.
현행법상 가상자산사업자가 법인에 대해 실명계정 발급을 하지 않도록 하는 명시적인 규정은 없지만 금융당국이 자금세탁이나 시장 과열을 우려하는 상황 속에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법인계좌를 개설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기관과 법인이 힘을 쓰지 못하는 데도 개미들의 힘으로 가상자산 시장 거래량이 많은 특수한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림자 규제로 막힌 한국과 달리 일본은 기관과 법인이 가상자산 시장 부활을 이끌고 있다. 한때 유력 코인거래소들의 파산과 해킹 사태로 시장 침체기를 맞았던 일본은 기시다 후미오 내각 출범 이후 진흥책이 잇따라 발표됐고 가상자산 투자 및 보유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일본 개인 투자자들은 가상자산 거래 수익의 최대 55%까지 누진세율을 적용받지만 법인에게는 과세 부담까지 낮춰주면서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다.
벤처캐피탈(VC)의 가상자산 투자에 대해서도 당근책을 내놨다. 벤처펀드가 토큰 등 가상자산에 직접 투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업이 주식 대신에 토큰으로 벤처펀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웹3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용이해지면서 시장 확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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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일변도에 막힌 가상자산 투자금 해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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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기업들의 가상자산 투자 수요를 흡수하지 못하다 보니 많은 기업들이 사업을 포기하거나 사업 거점을 해외로 옮기고 있다. 코인 등 가상자산 창출되는 막대한 경제효과를 놓치는 꼴이다.
취업난이 여전한 현재 상황에서 늘어날 수 있는 가상자산 관련 일자리도 아쉽다. 국내 기업들이 한국에서 가상자산 취득과 현금화가 불가능하다면 해당 사업을 위해선 해외가 유일한 선택지다.
시장 유동성이 확대되면 개인 투자자들도 더 안전하게 투자 활동을 영위할 수 있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는 개인 투자자들뿐인데 이들을 대상으로 한 투기성 매매 등이 만연하고 있다.
5대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이상거래 탐지에 힘을 쏟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인 계좌를 통해 기업들의 자금이 들어온다면 유동성이 확대돼 이 같은 걱정을 덜 수 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개인이 자금력이 있더라도 기관이나 기업들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지금보다 유동성이 더 커지면 개미 투자자들에게 안전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 여건이 개인 투자자들에겐 좋은 환경인 만큼 기업과 법인이 참여한다면 일본을 능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다른 가상자산 관계자는 “일본이 미진한 부분을 한국이 보완한다면 훨씬 성숙한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제서야 과세 문제를 본격 논의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기타 소득’으로 분류되는 20만엔 이상의 암호화폐 관련 소득에 대해 최대 55%의 소득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쪽은 활성화되고 있지만 개미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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