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CR-V 하이브리드 시승기
미국스런 내외관, 일본스런 기술력
듀얼모터로 답답함 ‘제로’
바야흐로 하이브리드차 전성시대다. 연비는 기본, 전기차처럼 충전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전기차를 산 건 아니지만 확실한 ‘저공해차’이니 환경을 챙겼다는 심리적 안도감까지 챙길 수 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차를 선택하면서 감수해야하는 점도 분명해졌다. 든든한 엔진을 무기로 무자비하게 몰아세우는 드라이빙의 즐거움이 그것이다. 덩치 대비 작은 엔진에 배터리 모터를 달아 가속력보단 연비를 챙기는 대부분의 하이브리드차는 내연기관의 펀드라이빙을 즐기던 이들에겐 여전히 망설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이 가운데 혼다는 하이브리드차가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는지를 아주 ‘무심하게’ 보여준다. 이미 약 10년 전부터 하이브리드차를 줄창 출시해온 만큼, 굳이 연비를 내세워 호들갑 떨지 않는다.연비는 이제 당연한 옵션이라는 자신감일까.
이틀간 혼다의 하이브리드 차량을 시승해 봤다. 서울시내 부터 경기도 양평까지 약 2시간 코스를 왕복으로 달렸고, 막히는 도심 구간과 뻥뚫린 고속도로, 일부 와인딩 구간까지 다양한 코스를 주행했다. 시승모델은 CR-V 하이브리드로, 가격은 5590만원이다.
지난해 6세대로 풀체인지된 CR-V 의 얼굴은 5세대 모델보다 더 우락부락하고 강인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국산차로 따지면 현대차 투싼, 기아 스포티지 급의 준중형 SUV인데, 여기저기 각진 디자인 덕에 차체가 더욱 커보인다.
혼다의 주력 시장이 미국인 만큼 CR-V는 사실 일본의 느낌보다는 미국스러운 느낌이 더 짙다. 노란색 할로겐 램프와 굵고 거친 선으로 이뤄진 디자인에서다. 그래서 일까, 우락부락한 차에서 여성 운전자가 내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차량에 타고 내릴 때마다 주변의 시선을 자주 훔쳤다.
내부 역시 미국에서 잘 팔리는 차 답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들이 있고, 아기자기하게 꾸몄다기보다는 세련된 투박함이 느껴졌다. 차량의 성능과 본질에 집중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매력적이겠지만, 화려한 옵션과 섬세한 디자인에 길들여진 소비자라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특히 내부 곳곳에는 아날로그의 성격이 여기저기서 묻어나온다. 공조, 온도 조절, 음향조절 등 꼭 필요한 기능들은 물리 다이얼과 버튼으로 남겼다. 개인적으로는 자주 사용하는 기능들마저 디스플레이 속으로 집어넣으며 터치가 난무하는 요즘 차들에서처럼 방황할 필요가 없어 반가웠다. 누가 운전하더라도 차에 적응 하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실 국내에서 구매할 수 있는 동급 차종을 생각하면 혼다에 대한 대단한 애착이 아니고서야 디자인만 보고 구매를 결정하기에는 큰 매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모난 곳은 없지만, 구매욕구를 자극할 만한 포인트가 부족했다. 하지만, 가속페달에 발을 대고 난 이후에는 걷잡을 수 없이 구매 욕구가 샘솟았다.
혼다 CR-V를 주행하며 느낀 가장 큰 충격은 두툼하고 무거운 차체를 조금의 망설임 없이 아주 가볍게 굴려 낸다는 점이다. 저속에서 고속으로의 급가속에도 엔진 굉음 없이 부드럽게 속도를 올려내고, 오르막에서 잠시 멈췄다 출발할 때에도 힘이 부치는 느낌이 전혀없다.
초창기에 비해 요즘 출시되는 대부분 하이브리드차 기술력이 상향평준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덩치에 맞지 않는 작은 엔진 탓에 초반 가속력이나 주행감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차들을 꽤 찾아볼 수 있다. 엔진과 모터를 오가는 찰나에 느껴지는 덜컥 하는 느낌도 완전히 없어지지 못했다.
CR-V 하이브리드의 강점은 바로 요즘 하이브리드차들이 메우지 못한 부분을 완벽히 메웠다는 데 있다. CR-V의 엔진과 모터를 오갈때의 느낌은 ‘참을 만 한’ 수준이 아니라 ‘느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이브리드차가 아니라 출력 좋은 내연기관차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더 강했다.
도로를 달릴때의 느낌도 ‘묵직함’ 보다는 ‘경쾌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같은 일본 업체인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차량과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토요타는 묵직하게 질주한다면, 혼다는 가볍고 경쾌하게 달린다. 하이브리드에서 ‘펀드라이빙’을 즐기고싶다면, 혼다 쪽이 압승이다.
핸들링도 일품이다. 준중형 SUV 씩이나 돼서 핸들링은 마치 세단 수준으로 부드럽다. 전장이 4m 70cm에 달하지만, 작은 회전반경 덕에 소형 SUV를 모는 듯 쉬운 운전이 가능했다. 초보 운전자도 CR-V를 운전할때는 유턴을 겁내지 않아도 된다.
급가속, 급감속을 몇번이고 시도했음에도 시승을 마친 후 연비는 15.7km/L. 요즘 하이브리드차가 기본 19~20km/L의 연비를 우습게 달성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낮은 수치지만, CR-V에서는 ‘펀드라이빙’이 가능하다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고성능차를 몰면서 일반 디젤차 수준의 연비를 바라기는 어렵 듯 말이다.
연비만 챙기고 싶다면 선택지가 많지만, ‘재밌는 하이브리드’를 찾기엔 쉽지 않다. 하이브리드차를 ‘연비와 재미를 바꾸는 차’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CR-V는 훌륭한 선택지가 될 듯 하다. SUV에 바라는 쾌적하고 넓은 공간과 강인한 디자인은 기본이다.
▲타깃
-하이브리드 재미없어 내연기관 고집했다면
▲주의할 점
-동급 국산차 대비 1000만원가량 비싼 몸값
-돈 값 하는 화려한 옵션과 인테리어 원한다면 주소를 잘못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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