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트랜시스 동탄시트연구센터 가보니
고객사 요구하는 스펙대로 시트가 ‘뚝딱’
120개 항목, 500개 시험 통과해야
진화하는 자동차 내부, 하늘 위 UAM까지
“최종 목적지까지의 주행을 시작합니다. 전방에 커브가 있습니다. 드라이빙 서포트 기능을 활성화 합니다.”
운전자 없이 텅 빈 차 안. 시트에 앉으니 전방 유리창에 목적지까지의 경로가 안내되면서 안내음성이 흘러나온다. 주행이 시작되자 의자가 저절로 뒤로 젖혀지고, 전방에 위험요소가 감지되자 다시 정자세로 시트가 세워진다. 이어 앞에 앉아있던 동승객이 내리자 해당 좌석이 접히며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모니터가 나타난다.
까마득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지난 5일 방문한 현대트랜시스 동탄시트연구센터에서 직접 겪은 일이다. 완전 자율주행차,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등 훗날 도래할 모빌리티를 대비해 현대트랜시스는 각종 선행 기술들을 자동차 시트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부품 계열사인 현대트랜시스는 올해로 자동차 시트사업을 시작한 지 20년을 맞았다. 현대차·기아가 전세계에서 3번째로 차량을 많이 판매하는 브랜드가 되기까지 그 한 켠에는 시트의 발전도 함께 자리했다.
이날 방문한 동탄시트연구센터 내 홍보관에서는 미래 모빌리티에 탑재될 ‘시트’에 대한 현대트랜시스의 고민이 담겨있었다. 완전 자율주행차, 하늘을 나는 UAM 등이 미래에 도래한다면 이에 맞는 시트도 만들어져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홍보관 내에서 직접 체험해본 ‘HTVM 24’는 미래모빌리티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기능이 한 곳에 모인 집약체였다. 탑승자 수와 운전환경에 따라 최적의 자세로 시트가 스스로 움직이고, 단순 이동이 아니라 생활 공간처럼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행이 시작되면 알아서 시트가 눕혀지고, 전방에 위험요소가 등장하면 정자세로 세워지고, 시트에 앉기만 하면 심박수와 호흡수를 측정해주고, 앉아있던 승객이 내리면 의자가 접히면서 모니터가 되는 식이다. 모니터에서는 다양한 영상, 게임 등 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 시트 하단에선 발마사지기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런 기술들이 흥미로운 것은 완전자율주행차가 나올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가까운 미래에 만날 가능성이 충분하단 점이다. 제네시스에 적용된 에르고 모션 시트, 기아 EV9에 적용된 마사지 시트처럼 앞으로 나올 차종에 일부 적용될 수도 있고, 곧 국내 출시될 기아의 PBV 시리즈에서도 기대할 법 하다.
또 소프트웨어 기술로 이뤄졌기 때문에 향후 양산차에 적용이 시작되면 OTA(무선업데이트)가 가능한 모든 차종에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서승우 현대트랜시스 시트본부장은 “이 기술들이 한번에 적용될 수는 없지만, 일부는 무선업데이트가 가능한 그랜저GN7(7세대) 이후 나온 양산차에 모두 가능해질 것”이라며 “소프트웨어 기술은 이미 제네시스 차종에 많이 적용돼있고, 적용되지 않은 기술들도 출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차를 넘어 이른바 ‘에어 택시’라고 불리는 UAM이 상용화된다면,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 이 곳에 전시된 UAM 모형에는 협소한 공간에 최대 4명이 효율적으로 탈 수 있도록 하면서, 도심 상공을 나는 비행체인 만큼 무게를 줄이기 위한 기술들이 곳곳에 들어갔다.
공간을 최적화하기 위해 플립 시트를 적용했고, 기존 시트의 폼패드 부분은 메쉬 소재로 대체해 시트 무게를 최대한 줄였다. 또 고소 공포증 승객을 위해 창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기술도 적용됐다. 아직까지 UAM 관련 법이 완벽하게 제정되지 않아 선행 연구한 기술 수준에 그치기는 하지만, 향후 승객 안전을 위한 비상착륙 시스템과 비상시 충격 흡수를 위한 기술들도 연구될 예정이다.
김도형 현대트랜시스 시트디자인팀 책임매니저는 “UAM은 낮은 상공을 다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이 경량화이고, 다음으로는 현대차 캐스퍼 정도로 내부가 협소하기 때문에 공간에 집중했다”며 “현대차그룹에서 신사업으로 UAM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슈퍼널과 주기적으로 소통하며 협업하고, 자체적으로 내재화를 위해 개발하기도 한다”고 했다.
200여개 테스트 통과해야만 비로소 '시트'가 된다
제 아무리 멋진 차라도 시트가 돌덩이같다면 망설임없이 구매할 수 있을까. 잘생긴 외관과 풍요로운 옵션도 좋지만, 사실 승객의 편안함은 물론 사고시 목숨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부품은 시트다. 사람과 가장 맞닿아있는 부품인 만큼, 현대트랜시스의 시트는 200여개의 가혹한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고객의 엉덩이를 영접할 자격을 얻는다.
이날 방문한 시험동에서는 다양한 테스트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1400kg에 달하는 무게로 벨트를 당겨 시트에서 벨트가 분리되는지, 충돌 사고시 헤드레스트가 목의 충격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이런 시험에서 나온 값이 법에 정해진 규정에 만족하는지 등을 시험한다.
최태진 현대트랜시스 시트시험팀 책임연구원은 “안전에 직결되다보니 법규 항목으로 지정해서 각 나라마다 정해진 법규를 충족해야한다. 판매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며 “총 200여개 테스트가 있고, 사양별로, 1~3열별로 나눠서 본다면 500개 정도 된다”고 말했다.
특히 사람이 차에 수만번 타고 내리기 때문에 반복된 움직임이 필수인 만큼, 시험동 대부분 테스트는 사람의 손이 아닌 로봇을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수동(매뉴얼) 시트, 자동 시트를 나눠 실제 사람이 손가락으로 조작하는 것처럼 정교하게 움직이고, 타고 내릴때 시트 가죽의 손상도와 모양 변형도도 세세하게 체크한다.
이외 진동, 온도, 내구성, 소음 등 약 200여개 테스트를 모두 통과한 시트는 마지막으로 ‘슬래드 시험실’로 옮겨지게 된다. 슬레드시험은 더미(인체모형)를 앉힌 시트를 배차 위에 놓고 충돌하는 방식이다. 더미에 전달되는 충격과 시트의 지지도 등을 평가해 실제 충돌시 시트가 사람의 충격을 얼마나 흡수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날 진행된 슬레드 시험은 80km의 속도로 운전석에 더미가 앉은 배차를 후방에서 충돌하는 방식이었다. 80km의 속력으로 충돌하면 사람에게 전달되는 속력은 41km다. 시험이 시작되자 충돌 직후 더미 인형의 머리가 크게 흔들렸지만, 시트는 앞으로 튀어나가려는 더미를 안정적으로 잡아내며 더미가 시트에서 벗어나려는 것을 막았다.
에어백 전개 성능 시험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1초도 되지 않아 에어백이 전개됐는데, 신호를 준 시점과 에어백이 터지는 시점 간 차이가 얼마나 발생하는 지를 미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 충돌시 에어백이 시트를 찢고 나오지 못하고 내부에서 터지지 않는지, 상온 뿐 아니라 저온, 고온에 방치된 에어백도 완벽하게 전개되는지, 에어백이 전개되며 승객의 머리와몸통에 가해지는 힘이 어느정도인 지 알 수 있다.
'기술력'이 자존심… 현대차·기아 넘어 글로벌 고객사 노린다
현대트랜시스가 시트 안전성은 물론 미래 시트기술 확보에 사활을 거는 건 단순히 현대차·기아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캡티브 마켓(내부 시장) 의존도를 줄여 리스크를 낮추고 다양한 글로벌 고객사로 수익원을 다변화해 독자적인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야심에서다.
현재 현대차·기아를 제외한 현대트랜시스의 고객은 전기차 스타트업인 리비안과 루시드 두 곳이다. 많은 시트업체들이 미래가 불확실한 신생 전기차업체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현대트랜시스는 과거 시트를 납품했던 GM과의 계약이 끊긴 후 첫 고객이었던 만큼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리비안과 루시드에 납품한 이후 납품을 검토 중인 고객사도 늘었다.
20년간 현대차·기아 차량에만 시트를 납품해왔지만, 고객다변화에 적극 나설 수 있게된 바탕으로는 ‘기술력’을 꼽았다. 현대차·기아 차량이 글로벌 시장에서 품질로 인정받는 만큼, 차량에 탑재되는 시트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충분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고명희 현대트랜시스 시트설계실장 상무는 “리비안, 루시드 두 브랜드가 현재로서는 유일하지만 추가로 (다른 업체들을) 컨택하고 있고, 검토도 진행하고 있다”며 “다른 업체와 비교해 우리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국내 최대, 세계에서도 상위일 것이라 자부하는 연구시설과 시험시설, 이를 통한 기술력이 우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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