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황재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해외 출장으로 위기 돌파에 나섰다. 이 회장은 미국, 최 회장은 대만을 찾았다.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다각적인 협력관계가 중요해짐에 따라 핵심 협력사를 찾아 동맹 강화에 나선 것이다.
다만 출장 시점을 고려해보면 총수들의 속내는 복잡미묘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최대 규모 노조단체가 지난 7일 파업을 실행에 옮겼다. SK그룹은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관장과의 이혼소송 판결이 세간에 확산되며 곤혹을 치르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이뤄진 이번 총수의 해외출장길이 리더십 회복과 분위기 반전을 가져올지 주목되는 이유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달 31일 삼성호암상 시상식이 끝난 직후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이번 출장에서 이 회장은 뉴욕에서 시작해 실리콘밸리에 이르기까지 미국 시장에만 집중한다.
삼성전자 해외사업에서 미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올 1분기 삼성전자는 미주 지역에서만 14조130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같은 기간 약 6조원을 기록한 국내 매출의 2배가 넘는 규모다. 현지 법인 경영진들을 만나 직접 사업 현황을 보고 받으면서 하반기 전략을 구체화하는 한편 임직원들을 격려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모바일 사업의 최대 고객사인 버라이즌사도 미국에 위치해 있다. 이 회장은 지난 4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최고경영자)를 만나 갤럭시 판매 강화를 위한 협업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반기 삼성 모바일 최대 행사인 갤럭시 언팩 개최지가 프랑스 파리가 되면서 미국 시장이 소외되지 않도록 현지 마케팅 전략을 더 강화할 필요성도 있다. 이번 미국 출장에 노태문 삼성전자 MX(모바일 경험) 사장이 동행한 이유다.
다만 이번 출장은 모바일 사업에 한정된다기보다는 반도체 사업 협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최대 과제는 5세대 HBM(고대역폭메모리) 제품을 미국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일이다. AI 반도체 시장의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의 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 현지에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약속한 만큼 현지 생산시설을 살피면서 정계 인사들과 네트워킹을 다지는 일도 이 회장이 맡은 과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의 IT, AI, 반도체, 통신 관련 기업 CEO와 정관계 인사들과 릴레이 미팅이 예정돼 있다”면서 “6월 중순까지 매일 분 단위 일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기간 최 회장은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와 함께 대만을 찾았다. 반도체 사업 협력 강화를 위해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 경영진을 만났다.
출장길에 오르기 전 최 회장은 3일 임시 수펙스회의를 열고 지난달 말 진행된 이혼 항소심 판결과 관련해 SK 구성원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와 함께 최 회장은 “이번 사안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 외에 엄혹한 글로벌 환경변화에 대응하며 사업 경쟁력을 제고하는 등 그룹 경영에 한층 매진하고자 한다”며 흔들림 없이 사업에 전념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특히 최 회장은 “반도체 등 디지털 사업 확장을 통해 AI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이며 그룹 사업 중 SK하이닉스에 힘을 실어줄 것임을 밝혔다.
이번 TSMC 경영진과의 미팅 역시 AI 반도체 수요 증가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HBM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엔비디아에 5세대 HBM을 단독 공급하는데 성공했지만 최근 차세대 HBM 출시 주기가 1년 단위로 빨라지며 6세대 HBM인 HBM4 개발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 특히 HBM4 는 더 향상된 성능을 위해 자체 기술만이 아닌 TSMC의 로직 선단 공정을 활용할 계획이다. 양 사는 지난 4월 기술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HBM4는 오는 2025년까지 양산할 계획”이라며 “차세대 HBM은 고객사의 요구에 맞춤형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술력이 중요한만큼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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