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이승석 기자] ‘아이폰 200원, 고급 스포츠카 4만원, 강남 아파트 1채에 20만원, 점심 한끼는 1원’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가격이냐고? 다름아닌 온라인 커뮤니티에 떠돌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체감물가’라는 블랙유머다.
이 회장이 한 해에 주식 배당으로 받는 돈이 3000억원이라는 데 착안한 계산법이다. 그의 배당(다른 소득은 제외하고)이 평범한 샐러리맨 연봉의 1만배에 해당하니, 직장인 체험물가를 1만분의 1로 줄이면 이 회장이 느끼는 가격이란 셈법이다.
터무니없는 발상이지만 강남 아파트 1채가 20만원이라면 여러 채 사고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여서 현실 속 이 회장의 소비생활은 ‘짠돌이’에 가깝다고 한다.
이 회장이 재판에 출석할 때 늘 같은 신발을 신고 있는 게 카메라에 포착됐는데 미국 스포츠 브랜드 ‘스케쳐스’의 신발로 9만원 짜리로 알려졌다. 자동차도 외제차가 아닌 제네시스, 카니발 등 국산을 애용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부친인 고(故) 이건희 전 회장의 빈소를 찾았을 때 직접 몰고 왔던 현대차 팰리세이드가 중고로 구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달라지는 소비 인식…”나를 위해 쓴다”
돈을 펑펑 쓰는 부자와 돈이라면 벌벌 떨며 한푼이라도 아끼는 부자, 어떤 게 진실에 더 가까운 모습일까?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부자 연령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제가 만난 나이 드신 고객, 즉 70~80대 부자는 절약 정신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상담할 때 보면 꼭 이면지를 달라고 해서 메모하시고, 전표를 이면지로 쓰시겠다며 챙겨 가기도 합니다. 낡은 신발, 헤진 지갑은 아주 흔하게 보는 모습입니다”
이 리포트에 나오는 하나은행 한 PB(프라이빗 뱅커)의 목격담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런 부자들의 인색한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 과거에는 돈을 아껴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인식이 강했던 반면, 최근에는 “내가 힘들게 번 돈, 내가 쓰겠다”는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하나금융 웰스리포트는 이런 부자들의 소비 성향 변화를 “생활비 지출에 있어서는 검소하지만 본인 취미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총자산 300억원을 넘는 소위 ‘슈퍼리치’에게 자산을 어떻게 쓰겠냐고 물었더니 ‘나의 건강과 취미활동, 노후를 위해 쓰고 싶다’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왔다. 반면 ‘가급적 쓰지 않고 아껴서 자식에게 상속하겠다’는 답은 자산 규모가 작을수록 높게 나왔다.
여행에 대한 지출도 많았다. 재산 규모가 커질수록 총지출에서 여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인의 경우 전체 지출에서 여행 비중은 8% 정도인 반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부자는 18%로 나타났다. 특히 슈퍼리치는 전체 소비의 1/4에 해당하는 24%를 여행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 부자들에겐 ‘소비도 투자’
두번째 특징은 사치스러운 소비는 경계하는 반면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부자들은 총지출에서 ‘자기계발’ 비중이 높았다. 전체 지출 의 16%가 ‘학습’이나 ‘운동’ 등에 지출한 돈으로 일반인(5%)보다 3배 이상 많았다.
하나은행은 이같은 부자들의 ‘지출원칙’을 공식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부자는 소비를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소비라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지출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소비를 자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소비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부자들의 특징입니다”
반면 부를 과시하기 위한 소비, 이른바 ‘플렉스(FLEX)’를 위해 쓰는 돈은 적었다. 우리금융이 지난해 6월 발표한 ‘더 리치 서울’ 보고서에 따르면 부자 가운데 자신의 가치관과 개성, 여유를 표현하기 위해 돈을 쓰는 ‘자기표현형 소비’는 6.7%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체 소비 중 가장 적은 항목이었다.
“제가 만나는 고객의 대부분은 겉치장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비싼 옷을 입지 않고, 백화점에 가는 것도 싫어하는 편입니다.
하나은행의 한 PB의 말이다.
◇ ‘그들만의 리그’ 위해선 돈 아끼지 않는다
세번째 소비 특징은 사회적 활동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교계에 진출하기 위해 무도회나 만찬 등에 열심히 참석하던 중세 유럽의 귀족처럼 현대 한국부자들도 사회적 네트워크를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이 사교 모임에 쓰는 지출비중은 4%에 불과한 반면 부자는 2배에 가까운 7%로 나타났다.
“고교 및 대학 동창들과의 모임은 회원권이 필요한 최고급 리조트에서 합니다. 지인들과 모임을 하고 식사 대접을 하는 데 나가는 지출이 적지 않은 편입니다. 특히 친구 또는 후배들과 함께 여행을 가서 쓰는 지출이 큽니다 “
하나은행의 PB가 부자들의 사교적 지출에 대해 한 말이다. 최근에는 기부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성품이 좋은 부자들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부자라고 하면 ‘돈은 많지만 매너 없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아랫사람을 함부로 부린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요즘 부자는 지식도 많고 성품이 좋은 편입니다”
하나은행 PB의 설명이다. 실제로 부자 가운데 기부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비율은 59%로 일반인(24%)의 2배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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