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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상법 개정을 서두르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주가를 누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상법을 고쳐 기업 경영진(이사)이 주주의 이익에 기반한 경영 판단을 내리도록 의무화해놓으면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등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밸류업 프로그램’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하지만 재계와 법조계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처음부터 잘못된 진단으로 처방전을 내놓아봐야 병이 낫기는커녕 없던 부작용까지 생겨 기업들의 경쟁력을 꺾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우선 법 개정이 확정될 경우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나라만의 옥상옥(屋上屋) 규제 체제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애매모호한 배임죄 적용 기준을 가진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기업인의 배임을 다룬 법만 봐도 상법상 특별배임죄, 형법상 업무상배임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가중처벌 적용 등으로 산재돼 있다. 배임죄를 형법에서 다루는 나라도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독일 등 3곳뿐이다. 그나마 독일이나 일본은 범죄 구성 요건을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기준이 모호해 경영인들을 억누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회사와 주주 모두에 충실 의무를 지우는 것도 전 세계에서 사실상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형법상 배임죄를 둔 일본과 독일은 이사에게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만 지우고 있으며 미국 역시 일부 주(州)에서 회사와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배임죄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전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배임죄 규정을 둔 우리나라가 여기서 족쇄를 하나 더 차겠다고 나서는 셈이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사회에 회사뿐 아니라 주주의 이익까지 법적 책임을 지우면 그 책임 범위가 비상적으로 커지게 돼 유능한 인재를 끌어올 수 없게 된다”며 “이사회가 반드시 필요한 의사 결정을 하지 않거나 뒤로 미뤄 상법 체계는 물론 기업들에도 메가톤급 충격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구나 우리 대법원은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은 엄격히 구별되며 △회사의 이사는 주주의 사무를 처리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판단해왔다. 만약 이사가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지도록 법이 개정될 경우 법리적 충돌이 발생해 법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당초 법무부도 이 같은 점을 우려해 반대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으나 용산 대통령실에서 밸류업 확산 지시가 나오면서 기류가 확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상법이 개정된다고 해서 주가가 뛴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 또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도리어 주가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사회 결정이 모든 주주를 만족시킨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고 주주들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거나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소송전이 남발되면 결국 기업 성장만 피해를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분할이나 전환사채(CB) 발행처럼 잠재적으로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는 경영 안건 외에 자본을 늘리는 증자나 각종 연구개발(R&D) 등 투자, 인수합병(M&A)과 같은 활동까지 소송 범위에 오를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가령 기업의 투자나 M&A는 시간이 흐른 뒤 실패로 판명될 수도 있는데 이때 주주들이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에 나서지 않았다고 소송을 걸어올 경우 기업들의 성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가 상법 개정을 추진하려면 ‘경영 판단의 원칙’을 법에 명문화해 절차에 흠결이 없을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어떤 경우에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적용하는지 명확한 정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 같은 명확한 조항이 없을 경우 이사회 결정이 지연되고 외부 투자도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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