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에서 궁금한 것들, 해보고 싶은데 귀찮은 것들, 그리고 ‘왜 저게 화제가 되는거지?’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Z세대 기자들이 직접 해보고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혹시 Z세대 기자들이 해봤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면 언제든 이메일로 제보해 주세요. 늘 환영입니다.
퍼스널 컬러 진단부터 각종 심리를 파악해 보는 붕어빵 테스트, 자취력 테스트, 이상형 테스트 등 내 일상과 생각도 ‘테스트’하려는 선택지가 넘치는 요즘. 그중 젊은 세대들이 가장 좋아하고 또 꾸준히 인기와 명성을 잃지 않는 것은 단연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테스트’다. 흔히들 하는 간이 테스트는 93개의 문항을 통해, 보다 상세한 고급형 테스트는 144개 문항을 통해 세계인을 16개의 성격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 만남에서의 인사가 ‘MBTI가 어떻게 되세요?’가 되고 ‘너 T야?’라는 말이 ‘폭스클럽’ 유튜브를 시작으로 어디서든 등장하는 유행어가 될 정도인 요즘. MBTI는 젊은 세대에 없어선 안 되는 존재가 됐다.
E(외향적)와 I(내향적), T(사고적)와 F(감정적)를 나누거나 특정 MBTI 성향을 가진 사람을 비하하고 ‘나와 맞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문화도 흔해지게 됐다.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MBTI가 바뀌기 때문에 매일매일 검사를 한다는 사람들도 많다. I가 E를 만나면 ‘기가 빨린다’고 하는 말도 너무나 흔하게 사용된다.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수차례 MBTI 검사에 나선, MBTI는 일종의 ‘프레임’이라고 생각하는 ESFP의 김명진 기자와 주변 사람들이 내 MBTI를 맞출 때마다 종종 놀라곤 했다는 ISTJ의 나병주 기자가 ‘MBTI가 다르면 정말 일상의 모든 것이 다를지’ 직접 그들의 주말을 할애해 비교해 봤다.
이처럼 이번 Z탐사대에서는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 또래 기자 두 명의 주말 일상을 따라가 본다. 들어가기에 앞서 성향을 일부러 구분 짓거나 일반화를 의도한 바 없으며 기사를 위한 오버액션이나 조작 행위 역시 전혀 없었음을 명확히 한다.
ESFP 김명진 기자 “주말에도 일하는 이유? 사람 만나는 게 좋으니까”
김명진 기자는 화창한 주말 아침, 주 5일을 오전 6시에 눈 뜨지만 주말에도 예외는 없다. ‘취미이자 일’을 하러 가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아주 많이) 의아해하거나 욕할 수도 있겠으나 주 5일 출근 뒤 주말에 또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단연 ‘사람’ 때문이다. ‘집에 혼자 누워 있어봤자 딱히 할 일도, 의미도 없다’가 내 여가의 가치관이다. ‘집순이’들이 좋아하는 누워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보기, 책 읽기, 자기, 인터넷 쇼핑하기 모두 나 역시 즐겨하는 활동이다. 그렇지만 그건 출퇴근길에도, 잠깐의 쉬는 시간에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좋든 싫든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남는 것이 있다. 또래 친구들이 밀집해 함께 마주 보고 일할 수 있는 레스토랑 아르바이트. 이런 좋은 기회를 방에만 머무르며 놓칠 수는 없다.
6시간가량의 아르바이트가 마침내 끝났다. 일이 끝날 때쯤 되면 퇴근 시간이 겹치는 동료들을 찾는다. 기왕 준비해서 밖에 나온 거, 놀고 들어가면 좋으니까. 여러 명을 모아 다른 동료의 퇴근 시간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근처에서 저녁을 먹거나 술자리를 가지며 이야기를 나눈다.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이런 식의 번개 모임이 이뤄진다.
“변우석 위버스 왔다”
“얘는 진짜 선재(변우석)를 사랑해”
“변우석은 정말 내 인생의 이상형이야…”
“난 졸업 때문에 요즘 위하준이 좋아져서 드라마하는 토요일만 기다리잖아”
“언니 나 다이소 오픈런해서 치크 하나 건진 거 보여줄까? 발라볼래?”
“오늘 바른 거야? 색 진짜 괜찮은데?”
“아까 10번 테이블 꼬마 손님 본 사람? 진짜 귀엽더라”
대화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다양한 관심사를 바탕으로 순식간에 대화 흐름이 바뀐다. 이것 또한 번개모임의 재미다.
얼마 전 장롱면허 탈출을 시도한 나에게 일요일은 ‘운전 연습의 날’이다. 부모님을 관리·감독자 삼아 집 근처 대형마트나 수도권 외곽 카페 등 이곳저곳을 다니며 주행 연습을 하는 게 공식 일정이다. 이번 주 일요일은 부모님의 ‘휴식 선언’이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그러려고 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었던 책도 빌리고, 사놓고 못 읽었던 책도 꺼냈다.
“나 지금 조퇴했어! 날씨도 좋은데 놀자!”
무시하고는 못 배기는 친구의 연락이다. 솔직히 잠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쉴까) 고민했으나, 금방 뛰쳐나갔다.
계획은 없다. 우선 올리브영으로 향한다. 이것저것 살펴보며 ‘화장품 품평회’를 실시한다. 요즘 유행하는 화장품을 하나 사보려던 참에 함께 간 동생이 성수 팝업스토어에 가서 사면 비슷한 가격에 사은품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준다. 그 자리에서 바로 성수에 함께 가겠다는 약속을 잡았다. 이렇게 별안간 나들이 계획이 생겼다.
다음은 다이소다. 할인은 따로 없으나 365일 가성비가 좋은 제품이 즐비해 있는 이곳. 서로의 추천에 따라 바구니에 이것저것 담는다. 각자 오늘 산 제품의 후기를 전해주기로 한다.
다른 쇼핑몰로 넘어간다.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트레저’와 의류 브랜드가 협업했다는 소식을 듣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해당 티셔츠를 구매하러 갔다. 그런데 막상 디자인을 보니 썩 맘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트레저라도 그다지 예쁘지 않은 티셔츠를 돈 주고 구매할 수는 없다. 그것과 상관없는 다른 디자인의 상의를 세 벌이나 샀다. 세일을 지나칠 수 없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슬슬 배가 고프다. 결국 우린 또 다른 쇼핑몰로 이동한다. 이곳에 오자마자 쇼핑몰 내 식당으로 향했다. 우린 김치볶음밥에 닭고기 스테이크까지 한 상 가득 시켜 놓고 숟가락을 들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참을 수 없었던 식욕에 우린 순식간에 식사를 해치우고, 디저트까지 마무리했다.
집 가는 길은 걸어서 40분, 버스로는 10분가량. 기자는 산책을 좋아해 ‘걷기왕’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둘이 함께 떠들면서 걸으면 귀가 시간도 기존보다 단축된다. 친구와 난 걸어가기로 한다.
주말은 역시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일도 하고 놀기도 하려면 하루하루가 너무 짧다.
ISTJ 나병주 기자 “나가 있어도 집 생각뿐…그게 힐링이니깐”
나병주 기자는 고된 평일을 마치고 평화로운 주말 아침을 맞았다. 잠에서는 깼지만 침대에선 일어나지 않는다. 딱히 이유는 없다. 그냥 일어나기가 싫다. 어제 자기 전에 보다 말았던 유튜브 영상을 다시 틀고 낄낄거린다.
내 주말은 보통 이렇게 시작한다. 누군가는 집에 있는 시간이 아깝다고 하지만, 나에겐 평일 동안 다 써버린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유튜브를 보든, 게임을 하든 상관없다.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하고 멍을 때리고 있어도 괜찮다.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힐링이니까.
충전을 마친 뒤 거실로 나가 집안일을 한다. 빨래, 청소 등 평일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주말에 해결해야 한다. 나름 뒹굴거리는 시간과 집안일 시간 모두 계획적으로 움직이니 이럴 때 보면 J가 맞는 것 같다. 날씨도 화창해 기분 좋게 빨래를 널고 다시 침대 안으로 들어간다. 물론 이것도 ‘계획’이다.
오후 6시. 초반부터 극적으로 시간이 흐른 점 양해를 구한다. ‘누워있기’를 마치고 이제야 친구들과 풋살을 하러 나왔다. 내가 매주 고정적으로 소화하는 유일한 스케줄이다. 놀라운 점은 이 모임이 내 주도하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창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모아 풋살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I라고 친구가 별로 없는 건 아니라는 점 명심해 주기 바란다. 오늘은 경기장이 좀 멀어 친구 차를 타고 시흥까지 왔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경기장에 도착했다. 급하게 몸을 풀고 경기에 들어간다. 오늘도 다치지 않고 재밌게!
풋살이 끝났다. 이제 집에 가서 씻고 누우면 완벽한 하루다. 그런데 친구 중 한 명이 동네에 가서 맥주 한잔하자고 제안한다. 오늘 내 계획에 맥주는 없었는데, 잠시 고민한다. 생각해 보니 하필 오늘 새벽 4시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있다.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절대 놓칠 수 없는 연례행사다. 맥주를 마시고 자면 일어나지 못하는 대참사가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다음에 마시자고 둘러대고 집으로 들어간다. 집에 오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역시 내 쉼터는 집밖에 없다. 잠시 씻고 잘 준비를 마친 뒤 혹여나 못 일어날까 걱정돼 알람을 3분 간격으로 맞춰두고 이른 시간 잠에 든다.
새벽에 축구까지 보는 고된 일정을 소화했기 때문에 늦잠을 잤다. 그래도 일요일이다. 아직 주말이기에 여전히 뒹굴거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평일에는 매일 일찍부터 바쁘게 움직이는데, 주말엔 좀 여유 부려도 괜찮지 않은가? 그리고 오늘 하루는 집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출근의 굴레를 위해 오늘은 집에서 푹 쉬어야겠다. 그런데 이러면 기사 분량이 나오지 않을 텐데…. 일부러 어디 나갔다 와야 하나? 걱정은 되지만 독자들에게 진실한 기사를 전달하는 게 기자의 사명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으며 마음을 접는다. 그리고 김명진 기자가 E니까 부족한 분량을 채워주리라 의심치 않는다. 걱정을 털어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소환사의 협곡(리그 오브 레전드)으로 떠났다.
저녁을 뭐 먹을지 고민하던 도중,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여행 갔다 기념품을 샀는데 전해줄 겸 저녁을 먹자고 한다. 내가 사는 동네로 와준다고 하니 안 나갈 수가 없다. 이러면 어제 거절한 친구에게 살짝 미안해진다. 다음에 물어보면 그땐 같이 가야겠다고 다짐하고 집을 나선다.
사실 내가 약속을 나가는 건 전부 이런 식이다. 누군가 만나자고 연락이 오면 나가고 연락이 안 오면 약속을 잡지 않는다. 나도 나름(?) 노력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혹시나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나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오늘도 친구의 부름을 받아 밥을 먹고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났다. 내일 출근이라 들어가서 쉬어야 하는데…. 친구에게 살짝 눈치를 준다. 다행히 친구가 바로 알아듣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역시 눈치 빠른 사람이 좋다. 집에 돌아가려고 보니 날씨가 선선한 게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다. 집까지 거리도 30분 정도라 적당하다. 이 정도 시간은 투자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산책 겸 걸어갔다. 이런 시간도 내게는 힐링이다.
집에 들어와 씻고 침대에 누웠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주말을 알차게 보낸 것 같아 뿌듯하다. 하지만 2주 연속 이렇게 보내는 건 어려울 것 같다. 다음 주엔 이번 주에 못 쉰 만큼 더 쉬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주말을 마무리한다.
이들의 주말 일상은 이렇게 다음 주에도, 다음다음 주에도 반복된다. 기자는 아마 여전히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놀 것이고 계속해서 사람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며 일상을 보낼 것이다. 반면에 짧더라도 스스로와의 약속을 가장 중요시하는, 혹은 누워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할 누군가의 일상 역시 비슷할 것이다.
두 기자의 일상에 비슷한 MBTI를 가진 이들이 얼마나 공감할지 궁금하다. 이들의 일상이 MBTI에 따라 구분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실제로 두 기자의 일과를 나열해 봤을 때 일종의 ‘성별 차이’도 느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사진 찍는 김 기자와 달리 나 기자는 평소에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넣을 자료가 많지 않았다. 나 기자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남자끼리 모였을 때 사진을 찍으면 ‘남자만 있는데 무슨 사진이냐’며 쏟아지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변명(?)했다. 이 또한 성별 특성을 일반화하려는 의도는 없으나, 김 기자 역시 남자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이야기라 공감했다.
누군가는 김 기자에게 ‘무계획, 강철 체력, 슈퍼 외향인’이라는 평가를 줬다. 쇼핑 중 ‘좋아하지만, 디자인이 별로라 사고 싶지 않다’고 한 부분에서는 ‘F’인데 ‘T’의 면모가 보인다는 동료들의 평가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대체 사람들은 왜 MBTI에 열광할까? 자칭타칭 ‘과몰입러’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A: 사람들은 인간을 분석하고 또 해석 당하는 걸 즐기는 것 같아.
B: 평생 이해 못 할 것 같던 사람의 MBTI를 알게 되고 그 사람의 행동과 말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MBTI는 과학’이라고 믿었지.
C: 다들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본인이 추구하는, 생각하는 자아나 모습을 남에게 확인받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나도 그런 편이고.
D: 처음엔 재밌어서 좋아했는데, 사람을 만나다 보니 대부분 그 사람의 행동이나 특성과 MBTI별 특징이 일치한다고 느껴져. 일종의 ‘빅데이터 수집’이랄까….
김경일 심리학자는 ‘지나치게 빠르고 자아를 찾기 어려운 정보의 홍수 사회 속에서 사람을 쉽고 간단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점’을 열광의 이유로 꼽았다.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을 기반으로 한 삶의 방식의 일부인 걸까? 바깥 활동을 좋아하든, 혼자 여유를 즐기든, 혹은 계획적이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모두 각자 삶의 루틴이 있다. 아무리 ‘MBTI는 참고할 만한 재미 요소일 뿐! 일반화 금지!’를 외쳐도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결코 ‘참고만’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가끔은 섣부른 판단보다 천천히 오래 곱씹는 인간관계가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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