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노조)이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요구안에 ‘승진 거부권’을 넣었다. 조합원이 비조합원 직급으로 넘어갈 때 승진을 거부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노조는 줄어드는 조합원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조합원은 혹시 모를 고용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HD현대중공업의 생산직 직급은 7~4급(14년)-기원(6년)-기장(6년)-기감(6년)-기정(기한 없음) 등 8단계로 이뤄진다. 사무직은 매니저(4년)-선임매니저(4년)-책임매니저(기한 없음) 3단계로 구성된다. 생산직 근로자는 기장에서 기감이 되면 비조합원 신분이 되고, 사무직은 선임에서 책임으로 승진하면 조합에서 자동으로 탈퇴하게 된다.
HD현대중공업 노조원 숫자는 매년 줄고 있다. 2013년엔 1만7505명(전체 직원 2만7246명)에 달했으나, 2018년 9826명(직원 1만4785명)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6381명(1만2061명)으로 축소됐다.
조합원 숫자가 줄면 매달 노조로 들어오는 조합비가 줄어든다. 조합비는 노조가 벌이는 여러 사업이나 사측과의 소송, 노조 전임자 지원 등에 쓰이는데 조합비가 감소하면 이런 활동에 지장이 생긴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조합원 수가 줄자 2019년에 조합비 부과 방식을 기존 기본급의 1.2%(약 2만2000원)에서 통상임금의 1%(약 3만8000원)로 바꿨다.
노조는 2016년에도 승진 거부권을 단체협약에 넣으려고 했다. HD현대중공업은 당시 실적 악화로 과장급(현재 사무직 책임·생산직 기장)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는데, 당시 비조합원 신분 직원들이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해 승진을 거부했다. HD현대중공업 단체협약에 따르면 회사는 집단감원 시 노조와의 합의가 필요하다.
최근 조선업은 호황이라 향후 몇 년간은 구조조정을 할 가능성이 낮다. 그럼에도 승진 거부권을 단협에 넣으려는 건 향후 불황이 왔을 때 고용 안정을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관계자는 “언제 고용 환경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조합원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장치가 생겼으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 입장에선 근로자가 승진을 거부하면 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직급에 따라 임무와 책임이 달라지는 기업 특성상 승진해야 할 시기에 승진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늘면 사내 질서가 흔들릴 수도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승진 거부권은 인사권에 관한 문제여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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