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호텔을 예약할 때는 가난한 살림 때문에 가격을 우선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찾아가기 편한 위치와 시설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으니 선정할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심하곤 한다.
몇 해 전 파리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저울질을 거듭한 끝에 잡은 숙소였건만, 나는 남편으로부터 “어디서 이런 호텔을 골라서 예약했느냐?”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그런 핀잔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 호텔은 가지가지로 문제가 많았다.
문제는 열쇠를 받아 들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발생했다. 빈방인 줄 알았고, 당연히 빈방이어야 하는 그 방에 다른 사람의 짐이 떡하니 있었다. 방에 있는 게 짐이었으니 망정이지, 사람이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말이다.
화들짝 놀라 프론트 데스크에 가서 사정을 말하니, 직원은 고개만 잠깐 갸웃하더니 곧 다른 열쇠를 내주는 거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 일을 겪고 나니 그 호텔 열쇠 관리 시스템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여권이며 돈이며, 중요한 것은 들고 다니기로 했다. 원래는 소매치기가 많은 파리에서는 호텔 방에 두고 다니려고 했는데.
방음 시설이 엉망인 것도 문제였다. 옆방 문을 여닫는 소리가 꼭 우리 방의 문을 여닫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리는 바람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방에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어 더운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통해 좀 나아지는데, 도로 쪽으로 창문이 나 있다 보니 너무 시끄러워 괴롭기 그지없었다.
만실이라 방을 교체해 줄 수 없다는 호텔 측 대답을 듣고 절망한 남편이 이미 지불한 호텔비를 포기하고라도 다른 호텔로 옮기자고 우기기에 이르렀다. 결정적인 이유는 욕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져서였다. 꾸준하게 물이 새면 수도관에 문제가 있나 보다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위층에서 물을 쓸 때만 새니 하수관 문제가 분명했다. 도무지 찜찜하여 욕실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욕실만 보면 울화가 치미는지 나를 계속 타박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좀 억울한 일이었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소개만 봤을 때는 정말 괜찮은 호텔 같았기 때문이다.
‘오스만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파리 시내 어느 곳과도 접근이 용이한 점이 특징’, ‘6층에 걸쳐 있는 총 65개의 객실에는 모두 욕실과 TV, 직통전화, 미니바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파리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전망을 가지고 있다’, ‘콘퍼런스 룸, 바·라운지, 주차, 공항 셔틀버스 등 부대시설이 있음’ 설명이 날 현혹했다. 무엇보다도 유서 깊은 가문의 저택 같은 건물 외관이 마음에 들어 예약을 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사진을 보며 기대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오스만 양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물 외관은 사진과 달리 허름했다. 내부 시설은 더 형편없었다. 욕실과 TV, 직통전화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거의 쓸모가 없었다. 무엇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파리의 아름다운 전망이 아니고, 쓰레기가 나뒹구는 변두리 풍경이었다. 그나마 지하철역 바로 옆에 있어 교통이 편리한 것 하나는 사실이었다.
내가 그 호텔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였던 공항 셔틀버스는 단언컨대 애초부터 없었던 게 분명하다. 또 지하 창고 같은 식당을 bar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허풍이 아니라 사기일 것이다.
호텔을 옮기자고 남편은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나는 돈이 아까워서 끝까지 버텼다. 그러나 체크 아웃할 때는 분노가 치밀었다. 애초에 사진발과 설명에 속은 게 잘못인 건 알지만 말이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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