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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이 ‘세계를 바꾼 혁신 기업’을 선정해 순위를 매겼는데 1위 자리를 생소한 기업이 차지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구글·도요타·월마트·알리바바 등을 제치고 최상단에 영국 보다폰과 함께 공동으로 이름을 올린 기업은 케냐의 사파리컴이었다. 보다폰과 사파리컴은 함께 내놓은 핀테크 서비스 ‘엠페사(M-pesa)’ 덕분에 그해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2007년 케냐에서 첫선을 보인 엠페사는 모바일의 첫 글자 M(엠)과 스와힐리어로 ‘돈’을 뜻하는 페사(pesa)를 조합해 만든 브랜드다. 말 그대로 ‘모바일 머니’다. 은행 인프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케냐의 한 대학생이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모태다. 모바일 송금은 물론 결제, 길거리 주차요금 정산, 세금이나 과태료 납부도 가능하다. 수도 나이로비의 고급 식당에서는 물론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 주변 가두점에서도 쓸 수 있다.
엠페사 덕분에 케냐에서는 정보기술(IT) 강국이라 자부하는 한국보다 훨씬 앞서 모바일 결제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은행권과 금융 당국의 설왕설래 속에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도 하지 못했을 때 케냐에서는 이미 시골 할머니도 과일 한 봉지를 사면서 가게 주인에게 휴대폰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엠페사의 위력은 케냐인의 일상만 바꾼 게 아니다. 엠페사가 직접 다른 국가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유사한 핀테크가 아프리카 각지에서 출현하는 계기가 됐다. 핀테크뿐 아니라 인력 매칭, e커머스 등 온라인 기반의 다양한 기업들이 앞다퉈 등장했다. 부족한 오프라인 인프라 구축에 시간과 돈을 쓰지 않고 곧장 모바일 사회로 진입하는 혁신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 2023년 초 기준 인터스위치, 플러터웨이브, 오페이, 안델라, 치퍼캐시, MNT-하란 등 11개 아프리카 스타트업이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 달러가 넘는 기업)으로 등극했고 이들을 뒤따르는 예비 유니콘도 현재 여럿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스타트업 육성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NEKS로 불리는 나이지리아·이집트·케냐·남아프리카공화국 등 4개 국가가 이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아프리카 인구의 32%, 국내총생산(GDP)의 51%를 차지하는 NEKS는 스타트업에 진심이다. 스타트업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대외적으로 국가 인지도를 높이는 역할까지 한다는 것을 이미 체득한 까닭이다. 아울러 젊은이들에게 성공에 대한 도전 정신을 갖게 하는 교육 효과까지 낸다는 점을 이들 국가의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게다가 늘 그렇듯이 이런 분위기를 결코 놓치지 않는 건 바로 자본이다. 세계 각지의 뭉칫돈이 아프리카로 향하고 있다. 미국·유럽은 물론 일본·중국의 자본도 아프리카의 유망 스타트업을 ‘찜’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단순히 투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중장기 관점에서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들 자본이 아프리카를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많은 인구와 높은 시장 성장성 때문이 아니다. 현지 젊은 창업가들의 특별한 목표 때문이다. 정주영·이병철·구인회 등 한국의 1세대 창업가들이 품었던 ‘보국(輔國) 정신’이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어서다. 어려운 현지 사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청년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는 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아프리카가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는데 이달 4~5일 열린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아프리카의 혁신 물결을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다. 양자 스타트업 포럼이 열리기는 했지만 소규모 부대 행사에 그쳤다. 공적개발원조(ODA) 확대, 광물 교역, 도로·철도 인프라 구축, 전자정부 지원, 북한 규탄 등 예상 가능한 의제들에 밀렸다. 우리 기업들의 아프리카 현지 진출을 위해 140억 달러 규모의 수출금융을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이지 않다. 물론 이번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와 기업 지원 방안의 무게가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기회의 땅’이라 부른 그곳의 미래지향적 꿈틀거림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초점을 맞췄더라면 아프리카 48개국 정상·대표들과의 동반자적 약속이 더 섬세하게 빛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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