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계약은 양 당사자가 모두 의무를 부담하는 쌍무계약이다. 특히 갑의 매매계약서상 잔금지급의무와 을의 매매 목적물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시에 이행돼야 하는 동시 이행관계다. 동시 이행관계에 있는 채권채무의 경우 상대방 채무의 이행이 없는 한 설사 계약에서 정한 시점에 본인의 채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채무불이행 책임의 유형 중 하나인 이행지체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쌍무계약에서 쌍방의 채무가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경우 일방의 채무의 이행기가 도래하더라도 상대방 채무의 이행제공이 있을 때까지는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이행지체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본다.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채권채무를 양 당사자가 모두 이행하지 않았다면 채권채무는 동시이행관계로 언제까지나 존속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사안에서 갑은 지금이라도 잔금을 지급하고 을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의 이행을 요구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채권채무도 소멸시효의 대상이 된다. 일반적으로 민사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다. 소멸시효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는 양 당사자가 각자 소유권이전등기의무, 잔금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10년이 경과했다면 각자 채무불이행 책임은 부담하지 않는다 해도 각 채권은 시효 도과로 소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례에서 갑이 을에게 잔금을 지급하면서 을에게 소유권이전등기의무의 이행을 청구했을 때 을이 갑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은 시효 도과로 소멸했다고 항변하게 되면 더 이상 갑은 을의 채무 이행을 요구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다만 을이 스스로 시효이익을 포기한다면 잔금을 지급받고 소유권이전등기 이행청구에 응할 수도 있다.
갑 입장에서는 갑이 이미 선이행한 계약금, 중도금은 을이 수령한 상태이고 을도 오랜 기간 자기채무인 소유권이전등기의무의 이행제공조차 없었는데 갑이 잔금을 지급해도 소유권이전등기의 이행을 요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매우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을 역시 자기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던 것인데 갑은 소유권이전등기의 청구를 할 수 없어 이미 지급한 계약금, 중도금은 을이 부당하게 몰취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하급심에서 위와 같은 상황에 처한 매수인이 이미 지급한 계약금이라도 돌려달라며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법원은 시효로 소멸한다는 의미는 시효기간이 도과되면 소급해서 권리의 효과를 부정하는 것이지 계약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즉 각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 하더라도 본래 매매계약의 효력이 무효, 취소, 해제 등으로 효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므로 이미 수취한 계약금과 중도금이 법률상 원인 없이 부당하게 수취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매수인의 청구를 기각했다.
결국 을이 스스로 시효이익을 포기하고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이행해주지 않는 이상 갑은 잔금지급에도 소유권이전등기를 이전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미 지급한 계약금, 중도금조차 반환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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