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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가짜 전세 계약서라도 보증보험 취소 부당, HUG 책임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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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집고] 지난달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처음으로 법원이 임차인의 손을 들어줘 주목을 받고 있다. 집주인이 위조한 계약서로 가입된 전세보증보험을 HUG가 취소하자 이 같은 조치가 부당하다며 임차인들이 제기한 소송이었다. 그간 전세계약이나 보증보험 가입 시 각종 사기 행위를 가려내는 몫은 주로 임차인에게 떠넘겨졌는데, 이번 판결에선 법원이 처음으로 정부기관에 책임을 물어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땅집고]지난해 서울 여의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서부관리센터에 마련된 ‘악성임대인(속칭 빌라왕 등) 보증이행 상담 창구’ 에서 전세보증금 사기 피해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지난 4일 HUG가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갈등이 지속될 전망이다.

■ 위조된 계약서 검증, 임차인 아닌 ‘HUG’에 책임 물어

지난달 28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민사6단독(최지경 부장판사)은 부산 180억원대 전세사기 피해자인 원고 A씨가 HUG와 임대인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임대차 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임대인 B씨는 ‘깡통주택’ 190채를 이용해 임차인 149명에게 보증금 183억원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았다. B씨는 부채와 보증금 합계가 건물 가치를 초과해 주택보증에 가입하기 어려워지자 보증금 액수를 줄여 위조한 계약서 36장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제출해 보증보험에 가입했다. 임대보증금보증이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 돌려주지 못하는 사고 발생 시 HUG가 보증금을 임차인에게 먼저 돌려주는 상품이다.

위조 계약서로 보증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드러나자 HUG는 뒤늦게 보증보험을 취소했고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됐다. 피해 임차인 중 한 명이 A씨다.

B씨의 위조 계약서를 뒤늦게 확인한 HUG는 ‘허위의 임대차 계약서로 신청했음이 밝혀진 경우 보증을 취소할 수 있다’는 세칙을 근거로 들며 일방적으로 보증을 취소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보증보험을 신뢰해 임대차계약을 갱신한 임차인은 HUG와 새로운 이해관계가 발생했으므로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라며 “HUG는 A씨의 기망행위에 가담한 적 없고 기망행위를 알 수 없었던 임차인에게 1억4500만원의 보증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 임차인들 “HUG 항소에 치가 떨려…업무상 과실 인정하라”

하지만 HUG는 즉각 항소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부산지역 시민사회대책위원회,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등은 4일 오후 부산국제금융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HUG의 항소 취하를 요구하며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촉구했다.

[땅집고]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4일 오전 부산 남구 국제금융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A씨는 4일 기자회견에서 “이 판결은 단순히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반환하라는 것 뿐만 아니라 HUG가 더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치라는 뜻도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행정기관이 해야할 일을 임차인에게 떠넘기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정부기관이 보증보험을 내줄 때 사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을 부여해야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A씨는 “전세사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 개편과 피해 임차인 보호에 앞장서야 할 HUG, 그 상위 기관인 국토교통부가 이토록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전세사기특별법을 대놓고 방해하는 모습에 치가 떨린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임대인의 고의에 의해 위조된 계약서로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한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임차인에게 돌아갔다. 제대로 된 법원의 판례도 나온 적이 없다. 보증금을 변제하는 상품을 취급하는 기관이 임대차계약서 위조 여부를 검증하는 데는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던 것이다. HUG는 “임대보증금 보증의 법정 성질에 대한 명확한 판례가 없어서 상급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어 항소를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부산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위조된 임대차계약서를 제출받고도 불과 이틀 만에 심사를 완료하고 보증서를 내준 뒤 수개월이 지나 취소 통보를 하는 심사 과정의 허술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위 사건과 비슷한 전세보증보험 관련 소송은 모두 15건이다. 다만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유사 소송들에 대해서 법원의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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