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모펀드(PEF) 운용사 미리캐피탈이 국내 PEF 운용사인 스틱인베스트먼트 지분을 추가 매수하면서 불편한 동거가 장기화할 조짐이다. 승계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는 스틱인베스트먼트 입장에선 2대 주주로 올라선 미리캐피탈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미리캐피탈은 전날 스틱인베스트먼트 주식 42만6100주(1.02%)를 추가 매수했다고 공시했다. 금액으로 치면 36억원어치다. 미리캐피탈의 스틱인베스트먼트 지분율은 8.09%로 도용환 인베스트먼트 회장(13.44%)과 스틱인베스트먼트 자기주식(12.31%)에 이어 세 번째다. 자사주를 빼면 2대 주주인 것이다.
미리캐피탈은 미국 PEF 운용사로 2020년에 설립됐다. 주로 아시아와 중동을 비롯한 신흥국 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경영권에 참여하는 운용사는 아니지만, 주주 제안을 보내는 등 행동주의 투자 활동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스틱인베스트먼트 외에 보안 솔루션 기업 지니언스(12.63%)와 물류 서비스업체 유수홀딩스(11.57%) 등을 보유하고 있다.
스틱 입장에선 지분 확대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67세에 접어든 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차남인 도재원 스틱벤처스 수석팀장(38)에게 회사를 승계할 것이란 예상도 있기 때문이다. 통상 업계에선 지분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지분을 일부 파는 경우가 잦다. 다만 도 회장은 승계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자사주를 우호 지분으로 잡아도 도 회장 측 지분이 25% 정도인데, 완전히 안심하긴 어려운 수준”이라며 “8%를 가진 미리캐피탈의 존재가 달갑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리캐피탈은 지난해 8월 스틱인베스트먼트 지분 5.01%를 확보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엔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로 기재했으나, 그해 12월 지분을 추가 취득하며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기관 투자자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지분 5% 이상 대량보유 종목에 대해 보유 목적을 공시해야 한다. 보유 목적은 주주권 행사 범위에 따라 ▲단순투자 ▲일반투자 ▲경영 참여로 나뉜다.
단순투자는 경영권에 영향을 줄 의사는 없고 단순 의결권 행사와 차익 실현을 목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투자 역시 경영권에 영향을 줄 의사는 없으나, 단순투자보다 더 적극적인 유형이다. 임원 보수에 대한 의견이나 배당금을 늘리라는 등의 제안을 할 수 있다. 경영참여는 회사 임원을 선·해임하는데 의견을 개진해 회사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리캐피탈이 추가 지분 매수에 나서며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바꾸는 것도 언제든 가능하다. 현 상황에서 스틱인베스트먼트 주식 22만5400주를 추가 매수해 지분율을 5.35P만 더 늘리면 도 회장과 지분율이 13.44%로 같아진다. 시가 기준 250억원(220만6400주 X 1만1000원)만 쓰면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는 얘기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미리캐피탈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으나, 경영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 미리캐피탈은 투자 과정에서 스틱인베스트먼트와 접촉해 장기투자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미리캐피탈은 2020년 설립된 미국계 PEF 운용사로 미국 보스턴과 일본 도쿄에 사무소를 두고 전 세계 100여개 국가에 투자하고 있다. 총 운용자산(AUM)은 4000억원 수준으로 스틱인베스트먼트(6조5000억원)의 12분의 1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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