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황재희 기자]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불교 미술품이 이병철 창업회장이 만든 호암미술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만났다.
3대의 인연이 빚어낸 대규모 불교미술 전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지난 3월 공개된 가운데 소리없이 6만명을 돌파했다고 삼성전자가 4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호암미술관의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이후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조망하기 위해 마련된 첫 고미술 기획전이다. 한국·일본·중국 3개국의 불교미술을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조명했다.
호암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에 소재한 27개 컬렉션에서 불교미술 걸작품 92점을 한 자리에 모았다. 한국 48점, 중국 19점, 일본 25점이 전시된 가운데 한국에 처음 들어와 관람객을 만나는 작품은 이중 절반 이상인 47점에 달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역시 이번 전시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다. 이 회장은 비즈니스 미팅 등을 위해 만난 주요 외빈들과 함께 이번 전시를 5차례나 관람하며 한국 전통 문화를 소개하는 한편 국내 문화·예술 발전에 대한 삼성의 노력과 기여를 설명했다.
특히 이 회장은 함께 방문한 일행들에게 ‘감지금니 묘법연화경’을 확대해 세밀하게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돋보기’를 직접 시연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은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으로 ‘아미타여래삼존도’, ‘아미타여래도’, 석가여래설법도’ 등의 작품과 함께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됐다.
이외에도 전시 작품들은 한결같이 국보급을 자랑한다. 해외 개인 소장가로부터 대여해 온 ‘백제의 미소’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국내에서 일반인에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고려시대 국보급 작품인 ‘나전 국당초문 경함’ 은 전세계에 단 6점만이 남아있는 진귀한 명품으로 알려졌다.
이번 전시에는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궁중숭불도’, ‘자수 아미타여래’ 등도 함께 전시됐다. 선대회장의 기증품이 창업회장이 만든 미술관에 다시 돌아와 세계적인 명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이건희 회장은 기업가이면서 동시에 예술애호가이자 사회사업가이기도 했다.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식 당시 이 선대회장은 “비록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용 회장 역시 문화와 예술 사랑이라는 선대의 뜻을 이어가는데 노력하고 있다. 앞서 2021년 이 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이 선대회장이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평생 모은 개인 소장품 중 2만3000여점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당시 유족들은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 선대회장의 말씀을 이행하는 것이 고인의 뜻을 기리는 진정한 의미의 상속이라는 데 뜻을 함께 했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미술 사랑 역시 뜨거웠다. 이 창업회장은 30여년에 걸쳐 수집한 미술품을 기반으로 1982년 4월22일 호암미술관을 개관했다.
미술관 설립은 해외에 유출되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소멸될 위기에 놓인 귀중한 민족문화의 유산들을 수집∙보호하기 위해 미술관 뿐만 아니라 문화전반에 걸친 교육과 향유의 장을 구상하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시작된 결과다. 특히 이 창업회장은 개인적으로 모아 왔던 문화재 1167점(국보·보물 10여점 포함)을 1978년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하기도 했다.
삼성 3대의 인연 속에 꽃을 피우게 된 이번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는 지난 3월27일 개막한 이래 지난달 말까지 총 6만명이 관람했다. 하루 평균 관람객수는 1000명을 넘어섰다. 오는 16일 폐막을 앞둔 가운데 관람객의 발길은 더욱 잦아질 전망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호평도 쏟아지고 있다. 이솔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미술학과 교수는 “불교미술 전시에서 볼 수 없었던 공간 연출이 매우 인상적”이라며 “곡선으로 연출한 관음보살도 공간에 이어 직선으로 구획된 백자 불상(백자 백의관음보살 입상) 공간이 이어지는 연출이 현대미술 전시장을 보는 것 같이 신선했다”고 평했다.
이데 세이노스케 일본 규슈대 교수는 “귀중한 작품들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재회해 한 자리에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었다”며 연구자들의 염원을 이뤄준 전시회”라고 평가했다.
호암미술관 관계자는 “이병철 창업회장, 이건희 선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미술 사랑과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국민들에게게 명작의 힘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라며 “국내 미술문화 부흥과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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