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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사모펀드, OB맥주의 운명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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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맥주와 사모펀드의 거래는 ‘아시아 사모펀드계의 전설’이라고 불린다.

일단 맥주 이야기부터 하자. 필자는 <다시 쓰는 맥주이야기>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책에서 ‘왜 맥주 비즈니스에서 M&A가 자주 일어나는가’에 관해서 설명했다.

“원래 물장사는 무거운 물건을 옮겨야하는 것이니 물류비용이 많이 들고, 그래서 규모의 경제가 크게 작용한다. 규모가 큰 회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여러 종류의 맥주를 큰 트럭에 한 번에 나르는 것과 작은 용달차 여러 대로 나누어 배달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게 된다. 그리고 냉동 보관 창고도 크면 클 수록 보관비용이 절약된다. 바로 그래서 어느 회사의 맥주가 조금만 맛있다고 소문나면 그 회사는 금방 큰 회사에 팔린다. 큰 맥주회사의 입장에서는 이미 맛으로 지역시장을 석권한 작은 맥주회사를 인수해버리는 것이 광고비도 아끼고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맥주는 ‘사이즈 비즈니스’다. 그것을 잘 이해하는 비즈니스맨 중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브라질의 1위 거부 호르헤 파울로 레만(Jorge Paulo Lemann) 회장이다. 브라질 테니스 챔피언을 5회나 했고 하버드대학 경제학과를 나왔다. 브라질에서 식품 쪽에 M&A를 열심히 하다가 암베브라는 브라질 맥주업체를 인수한 뒤 인수-확장-인수를 계속하여 중남미 맥주시장을 석권했다.

그런 다음 국제적인 맥주회사들과의 M&A를 계속하여 2008년에는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 AB인베브(ABInBev)를 탄생시켰다. 이후 버거킹을 인수하기도 했고 한국에도 들어온 캐나다의 커피체인 팀호튼도 인수했다. 워랜 버핏이 제일 존경하는 투자가다. 3G라는 큰 사모펀드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필자는 파울로 레만의 모든 비즈니스의 성공이 바로 ‘맥주 비즈니스가 사이즈 비즈니스’라는 것을 잘 이해한 것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모든 제국은 간단한 진리를 포착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 아닌가? 간단한 축재의 비밀을 하나 알아내 무한복제하면 제국이 된다.

한국으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원래 한국 맥주하면 OB와 크라운이었다. 여러 법적 규제도 있었지만 제3의 맥주회사가 들어와도 거대 양대산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맥주는 사이즈 비즈니스였고 두 거인들이 한국 시장을 이미 포화상태로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들어올 구멍이 없었다. (당시는 ‘수제맥주업’도 법으로 금지되어있었다. 물론 그 뒤에는 두 거대 맥주회사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었음은 불문가지)

당시 OB맥주의 오너였던 두산 그룹은 IMF사태 이후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2001년 AB인베브의 전신 인베브에게 OB맥주를 넘기기 시작했다. 인베브는 2008년 금융위기 중에 많은 차입금을 사용해 미국 맥주회사 앤하이저 부쉬(Anheuser-Busch)를 인수하면서 현재의 AB인베브(Anheuser-Busch InBev)로 재탄생했다. 앤하이저 부쉬도 맥주 제국이었는데 가족들이 워낙 방탕했고 서로간에 싸움이 심했다. 책이나 영화로 나올만한 콩가루 집안이었다. 제대로 된 사업가들은 그런 콩가루 집안의 사업을 노린다. 여차하면 싸게 인수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가 된 AB인베브는 많은 부채를 지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금이 쪼들렸다. 그런 와중에 리먼 사태가 발생하면서 금융위기가 닥쳐오자 AB인베브는 빨리 비핵심 자산을 매각해 차입금 부담을 줄여야 했다. 이런 급박한 사정으로 인해 AB인베브는 OB맥주를 2009년에 유명한 사모펀드 KKR과 어피니티에게 약 2조 원이라는 낮은 가격으로 신속하게 매각했다. 당시에도 이 가격은 싼 가격이라고 여겨졌다. 한국의 롯데 등이 경쟁자였었는데 한국의 재벌들이 당시만 하더라도 어려워진 회사를 후려친 가격으로 인수하는 습관에 젖어있었기 때문에 더 낮은 가격으로 인수하려 했고 그 결과 롯데는 경쟁에서 떨어져나갔다.

그런데 맥주가 사이즈 비즈니스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AB인베브는 일시적인 부채 부담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OB맥주를 팔기는 했지만 나중에 다시 살 권한(바이백옵션, EBIDTA(이자·세금·감가상각비·무형자산상각비 차감 전 이익) 대비 11배라고 아예 가격도 고정시켜두었다)을 남겨두었다. 이 바이백 옵션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하자. 이 바이백 옵션을 잘 사용하면 거래에 마술과 같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사모펀드 KKR와 어피니티는 OB맥주를 인수한 후 상당히 열심히 경영했다. 본부에서 최고 인재를 급투입했다. 일단 그 인재들이 전국의 도매상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상황을 점검했고 ‘한국식’ 인간관계를 재구축했다. 서양식 비인간적인 관계를 고집했던 AB인베브에 비해 한국인으로 구성된 최고 인재들의 한국식 인간관계 재정립은 도매상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영업을 위한 (영수증 처리가 곤란한) 접대비 등 (국제적인 기준으로는 약간 불투명하게 보일 수도 있는) 한국적인 경영문화를 빨리 받아들여 과감히 지출을 했고 (경쟁업체라고 볼 수도 있는) 진로에서 영업의 달인을 대거 영입했다. 그 과정은 필자가 당시 도매상을 하던 몇몇 분을 통해서 자세히 직접 들었다. 외국 기업이라 하더라도 뛰어난 사람들이 맡으니 오히려 한국사람들보다 더 한국적인 문화를 체득해서 자기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참 배울만 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매출 1위를 달성했고 매출은 크게 늘어났다. EBIDTA는 3~4배로 늘었다(경영진들도 ‘이런 경영 개선이 일어날 줄을 예상치 못했다’라고 나중에 실토했다). OB맥주의 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진거다. 경영을 잘한 것이고 그래서 운도 따라준 것. 그때 당시 경영진들은 100% 운이라고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95% 실력과 노력의 결과였다.

그런데 마침 그때 원래 주인이었던 AB인베브에서도 현금 사정이 크게 좋아졌고 그 결과 위에서 말한 바이백옵션을 사용하여 6조5000억 원을 들여 2014년에 재인수하게 되었다. KKR과 어피니티는 5년만에 3배 이상의 차익을 남기는 쾌거를 거두었다.

돌이켜 보면 사모펀드였던 KKR 과 어피니티는 (사모펀드라면 으레 하는 것으로 알려진) 구조조정·대량해고·비용절감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추가로 과감한 투자를 했다. 그리고 우수한 인력을 투입했다. 그리고 막대한 시설투자도 했다.

돌이켜보자.

두산이 OB맥주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미 밀리기 시작했던) 하이트에 더욱 밀려서 궁극적으로 파산 혹은 몰락했었을 것이고 기업을 쥐고 있던 두산 자체가 큰 자금난에 봉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수해서 싸게 팔았다가 비싼 돈을 주고 도로 산 AB인베브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계속쥐고 경영을 했었으면 본사의 자금난도 자금난이거니와, 경영 자체가 지지부진했었을 회사다. 그런데 누군가가 큰 리스크를 지면서 과감한 투자를 하고 최고급 인력을 동원해 혁신을 해서 완전히 다른 모습의 회사로 만들었다. 그 회사를 다시 사서 자신들의 세계 전략에 부합하는 아시아 지역의 기둥으로 만들었으니 4조 원의 시세 차익보다 자기들이 거둔 이익이 오히려 크다고 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선순환에 사모펀드가 공헌을 크게 했다고 볼 수있는 대목이다.

프레시안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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