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의 2024년은 표면상 평온하다. 주주환원정책에 힘입어 키움증권 주가는 작년 연말 대비 28%대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라덕연씨 사태와 영풍제지 미수금 논란 등 굵직한 사건이 한 해 두 번이나 터졌고, 이들 사태는 내부통제와 소비자보호 미흡 논란을 빚으면서 증권사의 기본인 고객 신뢰 자체에 의문을 남겼다. 최근 김익래 전 회장에게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했으나, 아직 김 전 회장의 605억원 사회환원 약속, 즉 재단설립은 진행되지 않고 있어 이를 시급히 완성해야 할 필요도 여전하다. 김 전 회장이 사회환원 약속을 내놓은지 1년을 막 넘긴 가운데, 건강한 증권시장질서를 세운다는 점에서 키움사태의 교훈을 되짚어 본다. <편집자주>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키움증권은 초대형투자은행(IB) 추진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다우키움그룹 김익래 전 회장이 드디어 불기소 판단을 받아내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30일 검찰은 지난해 봄 터졌던 대규모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키움증권 측은 이와 관련, “지분 매각 과정에서 불법성이 없었다는 것으로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아울러 키움증권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 키움증권이 초대형IB 인가 신청에 나선다. 무혐의 처분에 약간 앞선 지난달 28일 키움증권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공시를 내고, 초대형IB 인가를 통해 발행어음 비즈니스에 진출하는 신사업 계획을 공개했다.
표면적으로는 초대형IB 추진에 걸림돌이 없어진 상황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초대형IB의 백미인 발행어음 등에서 키움증권이 제대로 수혜를 입을 수 있을 것인지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또한 키움증권의 아성으로 여겨져 온 리테일 영역에서도 막강한 장악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내부 인사 불만도 없지 않다. 그리고, 지난 5월 김 전 회장이 내세웠음에도 아직 공회전 중인 사회환원 약속 이행 즉 재단설립을 경영권 승계의 방편이 아닌 실질적 사회공헌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IB 경쟁력 아직 미지수, 발행어음 사업 효과 본격화 시일 필요
발행어음 사업에 진출하기 되면 대규모 자금조달이 가능해지지만, 이 자금의 50%를 기업금융에 투자해야 하는 만큼 다양한 딜(Deal)을 확보해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실력발휘 또한 절박해지는 셈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키움증권이 초대형IB 인가를 얻는다고 해도 당장은 기업금융 역량이 타사 대비 약하다고 여겨진다. 발행어음에 발을 들여도, 기업금융에 자금 50%를 투자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때문에 실제로 그 효과는 미지수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다른 관계자는 이미 진입한 초대형IB 증권사들이 시장을 분할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후 진입하는 초대형IB들이 새 파이를 찾는 게 쉽지 않은 시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 보기도 했다.
키움증권이 이번에 내놓은 밸류업 방안에 따르면, 별도기준 자기자본이익률(ROE) 15% 이상을 추진한다. 이 계획처럼 15% 이상의 ROE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간 이익창출력은 6500억~7000억원 규모가 돼야 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근래 키움증권의 연간 당기순이익은 △2020년 5660억원 △2021년 7725억원 △2022년 4931억원 △2023년 3384억원 등이어서, 크게는 당기순이익을 2배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IB에 엄청난 기대와 동시에 부담도 걸려 있는 셈이다.
키움증권은 지난해 LS그룹의 계열사인 LS머티리얼즈의 상장에서 대표 주관 지위를 차지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그룹사 기업공개(IPO)를 주도한 것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다만 추가적으로 이 같은 성과를 이어나가야 하는데, 부담 없이 안정적 성과를 쌓아나갈 수 있을지에 아직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키움증권의 경우, 올해 1분기 IB 수수료 수익으로 544억원을 달성했다. 지난해 분기별 100~200억원선이었음을 감안하면 대폭 늘어난 것이다. ‘엄주성 체제’로 전환하면서 IB 조직을 기업금융부문으로 격상하는 등 노력이 효과를 봤다는 풀이도 나온다. 하지만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 확대 과정에서의 우발부채 규모 확대 등 우울한 부산물도 눈에 띈다. 올해 1분기 키움증권의 우발부채 규모는 약 2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7% 불어났다.
리테일 강자로서의 면모를 유지하면서 IB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면 금상첨화겠지만, 문제는 리테일 영역에서의 경쟁력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
IB 갈 길 먼 가운데, 리테일 아성 흔들려…‘게도 구럭도 놓치나’
증권업계에 따르면, 키움증권은 국내외 모두에서 리테일 분야 독보적 경쟁력을 과시해 왔다. 일례로 키움증권은 1분기 기준, 해외주식 거래대금 47조1000억원을 기록해 점유율 34.5%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키움증권의 1분기 연결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6.3% 감소했다. 올 1분기는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호재가 있었던 때다. KB증권의 1분기 연결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40.1% 증가했고 NH투자증권 역시 같은 기간 22.4% 증가를 보였다. 리테일 전문 증권사 키움증권이 주춤한 양상이라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아울러 올 1분기 기준 키움증권의 리테일 시장 점유율은 29.5%를 기록, 전년 동기 대비 1.0%포인트 내려앉았다. 실제 크기도 문제지만 30% 벽이 무너졌다는 심리적 효과까지 생각하면 가볍게 볼 수 없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신용융자 이용 고객의 거품이 빠지는 것으로 분석한다. “영풍제지 사태 이후 11월부터 진행한 신용 비율 상향 조치에 기인해 키움증권의 국내 주식 약정 점유율이 영향을 받은 것인데, 향후에도 이탈 지속 가능성이 있어 들여다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도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3일 앱 분석 통계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KB증권의 MTS인 ‘M-able(마블)’의 4월 월간 사용자 수(안드로이드 OS 기준)는 193만명이다. 부동의 1위였던 키움증권 ‘영웅문S#’은 같은 기간 이용자 수가 174만명으로 나타났다. KB증권이 MZ세대 취향에 걸맞은 시스템을 제공하고자 노력한 게 주효해 결국 키움증권의 벽을 뚫는 데 성공했다는 풀이가 나온다.
아울러, 지난해 키움사태가 마이너스 방향으로 시너지를 냈다는 우려를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다. 리테일 경쟁력이 주춤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올해 초 취임한 엄주성 대표의 어깨는 더 무거워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리테일 점유율보다는 브로커리지 수수료 성과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리테일 시장에서 실제로 얼마나 돈을 버느냐의 관점에서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 관점에서 보더라도 키움증권이 마냥 안전한 상황이라고 볼 건 아니다. 키움증권은 브로커리지 시장에 1위를 지켰지만 2위(미래에셋증권)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
키움증권 수탁수수료 규모는 전년 대비 1.0% 증가한 6563억원이었지만 시장 점유율은 2022년 14.4%에서 2023년 13.0%로 1.4%포인트 밀렸다. 미래에셋증권은 전년보다 8.4% 증가한 5518억원의 수탁수수료를 수확했다. 1위와 2위의 점유율 격차가 1%포인트 축소된 셈이다.
키움증권은 타사 대비 낮은 수수료로 이 같은 상황이 빚어졌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른바 키움사태로 인한 소비자 신뢰 저하의 타격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대 경영학부 김대종 교수는 “당연히 소비자 이탈은 키움사태의 여파가 실제로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결과라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온정주의 인사, 리스크 관리 책임자 신상필벌 놓쳐
사기 저하 문제도 심각하게 챙겨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키움증권은 최근 직원들에게 지난해 성과를 보상하는 과정에서 리테일총괄본부에 전년보다 낮은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했고, 특히 리테일본부 내 일부 팀은 성과급을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사기 저하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사회환원 약속은 아직 이행 시작이 안 되고 있고, (내부정보 이용 논란과 영풍제지 사태 등) 연이은 논란으로 인한 소비자 실망은 여전히 크므로 환원 약속의 빠른 이행은 물론, 파격적으로 수수료를 혜택을 주는 등 소비자 챙기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런 가운데 키움증권 주변에는 키움증권 황현순 전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 3월 다우키움그룹 계열인 사람인의 새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키움증권 A 전 리스크관리본부장도 키움YES저축은행의 본부장급 임원이 되는 등, 지난해 연달아 리스크 관리 실패 논란이 벌어진 지 불과 얼마 안 돼 책임자급 인사들이 이 같은 인사 결과를 받아들면서 신상필벌 원칙이 무너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울러 ‘김동준 승계 구도’가 기정사실화되고 있음에도 막상 그의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명확치 않은 ‘차기 김동준’ 성과…각자대표 엄호 나서나
김 대표가 이끄는 키움인베스트먼트의 최근 4년간 연간 매출은 2020년 143억원, 2021년 192억원, 2022년 102억원에 이어 지난해 155억원을 기록하며 성장이 정체돼 있는 모습이다. 또한 그가 대표를 겸직하는 키움프라이빗에쿼티의 매출 실적도 2020년 146억원, 2021년 252억원, 2022년 53억원, 2023년 128억원 등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상태다.
김 대표가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를 역임한지 6년째지만, 은둔에 가까운 행보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이런 가운데 키움인베스트먼트는 올 3월 김대현 대표를 각자대표로 선임, 김동준 단독대표 체제에 변화를 줬다. 키움인베스트먼트는 약 10년만에 심사역 출신 대표이사 체제를 맞게 된 것. 각자대표 체제이지만 김대현 대표가 경영 실무에서 사실상의 전권을 행사하고, 거시적인 임무를 맡는 구도로 정리하면서 ‘김동준 구하기’에 그룹의 마음이 더 급해지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이번에도 재단설립=승계 꼼수 동원’ 우려…재단의 100% 공공적 활동이 답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 전 회장의 사회환원 약속 즉 재단 설립이 어떻게 이행되는가의 중요성은 그의 불기소 무혐의 처분 이전 대비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2023년 이후 멈춰있는 초대형IB 추진에 다시 불은 붙었고, ‘김동준 체제’로의 승계 추진 시곗바늘도 점차 빨리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다. 막상 서둘러야 하는 IB 경쟁력 강화는 급하지만 리테일에서의 경쟁력 약화 등 적신호만 들어오는 게 아니냐는 것. 여기에 온정주의 인사와 명확하지 않은 아들의 경영 성과 등을 모두 끊어내지 않으면 일련의 키움사태를 거치면서 한껏 높아진 시장의 판단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가능성마저 있다.
그 가장 시급한 시험대가 사회환원 약속 이행이 될지 주목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사회환원 즉 재단설립과 운영을 승계 우회 지원 꼼수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종 교수는 “재단의 요직에 자식 등 우호적 인사가 앉거나 하는 등 꼼수 경영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며 본연의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게만 운영하는 방안을 찾으면 더 좋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키움증권과 김 전 회장이 용단을 내리지 않으면 기존 대기업들이 탈세와 지분 증여를 목적으로 비영리법인을 활용해 왔다는 연장선상에서 평가될 것이고, 한층 강도 높은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김 전 회장이 순수하게 공익 목적으로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 시각이 있다”면서 “비영리법인을 통해 세금을 피하고 지분을 넘기는 수법은 이미 대기업들이 흔하게 활용해 왔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키움증권이 별도 당기순이익 기준 주주환원율 30% 이상을 약속했고, 6%대의 현금배당이 예상되고 있는데 이에 따른 최대 수혜는 최대주주인 다우기술이다”라며 “이는 배당을 통해 현금을 확보함으로써 증여세 재원을 마련하고, 공익재단을 활용한 지분 일부를 넘기는 것도 가능한 시나리오를 낳는다”고 부연했다. 현재 키움증권의 최대주주는 다우기술로 보통주 1080만1594주(지분율 42.31%)를 보유하고 있으며, 공익법인 등의 설립 및 운영에 대한 법률에 따르면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을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보유할 경우 동일 법인이 발행한 주식은 5% 한도 내에서 제재 없이 취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키움증권 관계자는 “주주환원정책이나 사회환원은 순수하게 주주의 이익과 공익을 위한 결정”이라고 말해 향후 지켜봐야 할 대목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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