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중립국 스위스가 매년 개최
C-쇼크 이후 4년 연속 행사 무산
전자ㆍIT 진화 속에서 車만 고집
미디어 변화…국제모터쇼도 위기
한때 5대 국제모터쇼 가운데 하나로 추앙받았던 제네바 모터쇼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영국 자동차 권위지 오토카는 전염병의 대유행과 보수적인 행사 취지ㆍ기업의 지원 중단ㆍ미디어 환경의 변화ㆍ자동차 산업의 침체 등을 꼽았다.
앞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제네바 국제모터쇼 재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제네바 모터쇼를 영구적으로 폐지한다”고 밝혔다. 행사를 주최해온 재단도 해체한다.
제네바 모터쇼는 1905년 첫선을 보인 이래 2019년까지 미국(북미오토쇼) △독일(프랑크푸르트) △프랑스(파리오토쇼) △일본(도쿄모터쇼) 등과 함께 글로벌 5대 국제 모터쇼로 추앙받았다. 전성기에는 120여 개 업체와 1만여 명의 취재진, 60만 명 넘는 방문객이 제네바를 찾았다.
5대 모터쇼 개최지 가운데 유일하게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는다. 덕분에 특정 기업에 편중되지 않아 주요 업체가 동등한 조건에서 행사에 참여해 왔다.
예컨대 독일 프랑크푸르느 모터쇼에서는 자국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와 BMWㆍ폭스바겐그룹 등이 대형 전시관 하나를 통째로 꿰차고 부스를 차린다. 프랑스에선 르노와 푸조가 텃세를 부리고, 미국에선 미국 회사가 주 무대를 차지하는 것과 상반된다.
이와 달리 제네바 쇼에서는 모든 브랜드가 같은 규격의 전시 부스를 추첨을 통해 배당받는다.
이렇듯 가장 공정한 모터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다양한 조건은 결국 5대 모터쇼 가운데 가장 먼저 문을 닫는 처지로 전락했다.
오토카는 ‘누가 제네바 국제모터쇼를 죽였나?(Who killed the Geneva motor show?)’라는 분석 기사를 통해 모두 5가지 배경을 꼽았다.
먼저 제네바 모터쇼는 2020년부터 코로나19 대유행,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세계 지정학적 상황의 불안정 등을 이유로 지난해까지 4년 연속으로 취소됐다. 올해 2월 다시 문을 열었지만, 직전 행사인 2019년과 비교하면 참가 업체 수가 크게 줄었다. 방문객도 17만 명을 밑돌아 목표(20만 명)에 못 미쳤다.
둘째,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 전기차 등 자동차가 전자제품화되면서 유력 자동차 업체들은 국제모터쇼보다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에 참가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런데도 제네바 모터쇼는 오로지 자동차에 국한한 행사를 고집했다. 자동차 회사에 대한 차별을 걷어냈으나 자동차 이외 기업은 등한시했다.
셋째, 2019년 행사가 코로나19 대유행을 앞두고 전격 취소됐으나 참가 업체를 위한 보상은 일절 없었다. 오토카는 “이에 대해 분노했던 일부 기업이 이후 지원을 끊었다”고 지적했다.
넷째, 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제네바 모터쇼 폐지의 배경이 됐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과 동영상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신차를 접할 기회가 다양해졌다. 20세기까지는 국제모터쇼가 신차 뉴스를 접할 유일한 기회였으나 이제 PC와 스마트폰으로 충분히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제네바 모터쇼의 트레이드 마크 가운데 하나인 ‘가장 공정한 모터쇼’라는 취지가 가장 빠른 폐지의 배경이 됐다. 5대 모터쇼 대부분이 자국 브랜드의 지원을 통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나 정작 자국 자동차 기업이 없는 스위스가 ‘공정함’만을 앞세워 국제모터쇼의 역사를 이어가기 어려웠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알렉상드르 세나클렌스 제네바모터쇼 조직위원장은 “자국 자동차 기업이 후원하고 선호하는 프랑스와 독일 모터쇼와의 경쟁이 심화했기 때문”이라고 모터쇼 폐지의 배경을 설명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자동차 산업의 경쟁구도가 재편되면서 주도권을 쥐고 있던 주요 브랜드가 위축됐다는 점도 배경 가운데 하나다. 푸조-시트로엥과 피아트-크라이슬러의 합병 등 살아남기 위한 자동차 기업의 합종연횡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한편, 제네바 모터쇼는 중동에서 명맥을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카타르에서 행사를 개최했고 내년 11월에 또 한 번 카타르에서 행사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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