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완섭 재미언론인
아이비리그 명문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L모씨는 1년간 취업 재수한 끝에 최근 겨우 한 무역회사에 취업을 했다. 졸업 전에 인턴 자리를 찾지 못해 군 입대를 하려 했으나 여건에 맞지 않아 실패, 1년 동안 수십 군데 원서를 낸 끝에 가까스로 일자리를 찾았다. 대기업이나 첨단 기업도 아닌 이름 모를 중견기업이다.
L씨는 그나마 행운아에 속한다. 유타대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수학 석사 학위까지 받은 J씨는 400여 군데 원서를 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첨단 기업이 선호한다는 이른바 스템(STEM: 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군데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턴 등 해당 분야 경험이 없다는 게 거절 이유다.
일자리 넘치는데 대졸자들은 취업 재수
미국의 대졸 취업시장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다. 디지털 시대 이른바 Z세대의 취업난은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한 취업 전문 사이트가 배출한 300여 명의 인턴 가운데 고용주로부터 회신을 받은 사례는 5%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이후 실업이 줄고 일자리가 넘쳐난다는 헤드라인이 연일 장식하고, 인공지능(AI) 기업들이 혁신을 거듭하고 있으며 주식시장이 호황을 구가하는 판에 대졸 취업난이라니. 당사자는 물론 대학들도 당혹해하고 있다.
발단은 코로나19에서부터이다. 지구촌을 휩쓸었던 팬데믹에서 벗어나면서 저학력, 비숙련직 고용은 늘어났지만 대졸자들이 비집고 들어갈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체질개선에 나선 기업들은 학위보다 기술과 경험이 풍부한 실질적인 인력을 찾기 시작했으나 졸업장 하나 덜렁 들고 나선 졸업생들은 그에 걸맞은 인재가 아니었다.
최소 인력으로 운영하고 있는 터여서 학위만 가진 무경험, 비숙련 인력을 채용해 가르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막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준비된 인재를 원하는데, 대학은 10년, 2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게 기업들의 불만이다.
취업 전문 연구소에 따르면 대졸자의 52%가 졸업 후 1년 후까지 잠재실업 상태에 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자의 45%는 졸업 후 10년이 지난 후에도 전공에 걸맞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대졸 신입사원 채용을 2% 더 줄인다니 취업난은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고용주 측에서는 세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뉴저지주에 있는 인텔리전트 연구소가 고용주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당수 고용주들은 Z세대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 첫 번째는 소통장애. 부적절한 옷차림과 불합리한 보수 요구 등 대화와 소통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 지각이 잦고, 마감일을 맞추지 못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마디로 사회성과 소통능력이 떨어지고, 직장인으로서의 자세와 태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취업준비생들은 그들대로 볼멘 목소리가 크다. 휴대전화 한 통화로 음식 주문과 쇼핑을 뚝딱 해결하고, 앉아서 지구촌 누구와도 데이터를 주고받는 디지털 세대인데, 구세대 시각으로만 바라보지 말라고 주문한다. 기술을 습득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은 결코 구세대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학력제한 없애고 기술·경험 중시
대학 졸업장이 취업과 고소득을 보장해 주던 시대는 지나갔다. 기업들은 학력을 묻지 않고 업무에 필요한 기술과 경험을 더 중요하게 본다. 수십만 달러를 들여 취득한 학위가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한 셈이다.
미국 기업 45%가 최근 채용요강에서 학위 요건을 빼기로 했다. 구글, IBM, 월마트 등 대기업들이 앞장섰다. 메릴랜드,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주 등 12개 주정부도 학위요건을 없앴다.
기업과 사회가 원치 않는 졸업장이 무슨 소용인가. 취업시장에서 외면받지 않는 인재를 배출해 내기 위한 교육방침과 전공·학제 재정비, 산학협동 체계 개편 등이 시급해 보인다.
Wanseob.k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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