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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의 미술마을 正舌] 문화 선진국, 이제 ‘양’에서 ‘질’로

아주경제 조회수  

사진정준모
영국의 북부 던디의 V&A분관, 1층의 기념품가게가 백화점같다. [사진=정준모]

 

◆가려 먹어야 할 마음의 양식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0위권에 들었다는 말이 팍팍한 삶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 유명 식당 앞을 지나다 보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제 우리나라도 한 끼 식사가 ‘허기’를 때우기보다는 ‘맛’을 즐기는 시대로 바뀌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렇게 한 끼를 먹더라도 식사의 질을 생각하는, 즉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골라먹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몸을 위해 먹는 식사는 신경을 쓰면서, 마음의 양식이라 할 문화예술 소비는 여전히 크게 가리지 않는 듯하다.
 
2023년 말 문화체육관광부의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 국민의 문화예술 소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영화(52.4%), 대중음악·연예(11.0%), 미술(7.3%), 뮤지컬(5.5%), 연극(5.4%), 전통예술(2.4%), 문학행사(1.9%), 서양음악·연주(1.9%), 무용(0.5%)으로 나타났다.
 

대중예술로 분류되는 영화와 대중음악·연예 분야 두 장르를 합하면 63.4%를 차지해 약 3/5의 국민이 소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을 차지하는 것이 미술 분야이다. 그러나 이렇게 소비율이 높은 장르일수록 만족도는 낮은 결과를 나타냈다. 만족도를 살펴보면 7점 만점에 뮤지컬 (5.77), 서양음악(5.71), 전통예술(5.70), 연극(5.67), 미술전시회(5.61), 무용(5.60), 문학행사(5.36), 대중음악·연예(5.35), 영화(5.34) 순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눈 여겨 볼 것은 소비율이 높은 영화나 대중음악·연예 그리고 문학 행사와 무용 다음으로 미술전시 순으로 불만족스럽다는 답변이 나왔다는 점이다.
 
이는 물론 문화예술소비자가 많을수록 확률상 불만족스러운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 인지도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비교적 소비자가격이 높지만, 마니아층이 많은 뮤지컬이나 서양 음악, 전통예술이나 연극이 만족도가 높은 것을 보면 역시 어느 정도 식견과 흥미, 관심이 있는 분야가 역시 좀 더 높은 만족도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좀 더 쉽게 소비가 가능한 영화나 대중음악·연예 분야가 소비도는 높지만, 만족도가 낮다는 점은 선택의 용이함이나 쉬운 접근성에 비해 대중적인 기호와 취미가 좀 더 높은 지적 또는 문화적 감수성을 채워 줄 수 있는 좀 더 높은 수준의 프로그램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미술의 경우 소비 빈도는 9개 장르 중 3위에 속하지만, 만족도는 5위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많은 고객이 미술 분야에 관심이 있지만,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공급되는 프로그램의 수준이 고객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그간 우리나라의 미술관 박물관 정책이 ‘질’보다는 ‘양’ 위주의 성장에 집중한 탓이 크다. 물론 질적 성장보다는 양적성장에 집중해야 하는 개발도상국가들 모두가 그렇듯이 우리나라도 문화 예술 향수권 신장보다는 문화를 통한 국가적 정체성 확립을 위한 민족문화창달이라는 국민국가의 목표에 집중했고 그 결과 복합문화공간화라는 공연장, 전시장들이 혼합된 시설 즉 건축공사 위주의 문화예술기관 설립에 치중해 왔다.  

사진정준모
건축가 장누밸이 인테리어를 한 마드리드 레이나소피아미술관 카페테리아 [사진=정준모]

◆‘양’보다 ‘질’
 
대한민국은 1990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각각 독립적인 기관으로 규정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을 만들어 공사립미술관 박물관 1000관 건립에 박차를 가한 결과 2023년 기준 한국의 박물관은 913관, 미술관은 286관으로 1199관을 채웠다.
 
이렇게 미술관과 박물관을 따로 규정하다 보니, 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문화정책관실에, 국립현대미술관은 예술정책관실에 배속되어 미술관을 당대미술(temporary)의 진흥과 발전을 담당하는 역할에 한정하고 있다.
 


미술관과 박물관의 설립주체에 따라 구분하면 박물관은 국립 54관, 공립 389관, 사립 365관, 대학박물관이 105관, 미술관은 국립이 1관(4관), 공립 79관, 사립 192관, 대학 14관 등이다. 913개 박물관의 총 직원은 1만657명으로 1관당 평균 직원은 11.67명이며 이중 전문직(학예연구직)은 3528명으로 평균 33.1%를 차지한다.
 
미술관의 경우 총 직원수는 3106명으로 이중 전문직원은 1069명으로 약 34.4%에 달하며 1관당 평균 직원 수는 10.86명이다. 이렇게 통계만 보면 전문직이 1/3 정도에 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학예연구직을 포함한 전문직이 50% 이상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조차도 레지스트라 (Registrar)라는 가장 기본적인 소장품 등록을 담당하는 인원조차 정원으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지방미술관 박물관의 경우 작품의 상태조사(Condition Check)와 수복과 보존을 담당할 부서는 물론 이를 담당할 컨서베이터(Conservator) 조차 없는 곳이 거의 98%에 달한다. 또한 인구 100만명당 미술관은 서울, 인천, 경기도를 포함하는 수도권의 경우 4.12관, 지방의 경우 7.03관으로 평균 3.67관이다. 박물관의 경우 수도권이 11.28관, 지방이 24.36관으로 평균 17.75관으로 지방의 미술관 박물관숫자가 수도권보다 많지만, 전문인력이나 소장품의 경우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22년 통계지만 박물관의 경우 수도권에 288관, 지방에 621관이 미술관은 수도권 107관, 지방 178관으로 지방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기관당 인력은 그 반대로 박물관 한 곳당 평균 직원 수는 수도권이 13.7명, 지방이 9.5명으로 수도권이 더 나았다. 미술관은 수도권 1곳의 평균 직원 수는 16.7명이었지만 지방은 6.6명에 그쳤다.
 
세계적으로 미국과 독일은 가장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지닌 나라다. 2024년 현재 미국은 약 3만3082관, 독일은 6741관, 일본은 5738관으로 1, 2, 3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대한민국도 양에서는 만만치 않은 통계를 자랑한다. 래리스 리스트(Larry’s List)란 연구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동시대미술(Contemporary)을 다루는 미술관이 446관이 있는데 그중 독일 60관, 미국 59관, 한국이 50관으로 3위에 해당한다.
 
그런데 도시별 순위를 보면 17관을 보유한 서울이 1위, 14관의 베를린이 2위, 3위는 11관을 보유한 베이징, 10관을 지닌 뉴욕 그리고 9관의 아테네가 5위를 차지했다. 아무튼 외형상 특히 대한민국의 시각문화예술 인프라는 가히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사진정준모
프랑크푸르트 슈타텔미술관 숍 [사진=정준모]

◆성장에서 성숙으로
 
대한민국의 문화 예술 기반 시설은 가히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제는 성장에서 성숙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필자가 미술관 박물관 입장료에 대해서 논하는 것도 실은 미술관 박물관의 방문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고, 특히 동시대 미술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는 지금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미술관 박물관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공·사립 미술관 박물관 중에서 연중 소장품을 기반으로 상설 전시를 여는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이는 미술관 박물관 건립 당시 소장품도 확보하지 않은 채 건물만 짓고 본 때문이다. 대부분 국립미술관 박물관과 광역시도 소재 미술관 박물관 예산은 인건비와 시설관리 유지비로 사용되고 작품 수집이나 전시 교육 관련 예산은 1/3을 넘지 않는다, 이하 시 군 구립미술관의 경우는 관장은 대부분 없거나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 맡고 있고, 전문직은 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정준모
국내 공립미술관(광역시도) 운영예산 현황(2020년 기준) [표=정준모]

미술관에 필요한 필수인력조차 확보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고 보면 말 그대로 ‘팥소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소위 볼 것 없는 미술관 박물관이지만 미술관 박물관을 찾는 방문객은 넘쳐난다. 물론 특정 미술관 박물관 특히 국립미술관 박물관에 방문객이 집중된다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한편으론 다른 공사립미술관 박물관의 프로그램 즉 내용의 수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관 박물관 방문객 숫자는 가히 폭발적이다. 영국에서 발간되는 ‘아트 뉴스페이퍼’에 따르면 2023년 국립중앙박물관 연간 관람객 수는 418만285명이었다. 이는 세계 6위에 해당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연도별 관람객 수’에 따르면 2023년 관람객 수는 2022년 341만1381명보다 약 22.5% 늘어난 것으로, 1945년 개관 이래 최다 수치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분관인 국립경주박물관은 134만32명의 방문객을 기록해 43위에 올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202만1771명을 기록해 아시아 4위, 세계 26위로 집계됐다. 여기에 과천관과 덕수궁관을 더하면 300만명을 훌쩍 넘긴다.
 
2023년 가장 많은 방문객을 기록한 곳은 886만명을 기록한 파리의 루브르다. 그 뒤를 676만4858명이 방문한 바티칸 박물관이 이었고 런던의 영국박물관이 582만860명,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536만4000명에 이어 런던의 테이트 모던이 474만2038명의 방문객이 찾아 2위~5위를 차지했다.


 
6위에 오른 국립중앙박물관의 관람객 수는 아시아 기준으로는 가장 높은 순위다. 아시아 지역 미술관 박물관을 보면 요즘 경제난으로 개관시간 단축을 고려하고있는 홍콩 엠플러스(M+) 미술관이 279만7616명의 방문객이 찾아 15위, 도쿄의 소장품없이 특별기획전과 대관전시에 집중하는 국립 신미술관이 225만758명을 모아 21위를 기록했다.
 
이렇게 2023년 메트로폴리탄(MET)의 매출 중 입장료 수입 비중은 13.8%로 전년 10.3% 대비 3.5%늘었다. 뉴욕근대미술관(MoMA)도 입장료가 수입의 14.5%, 휘트니는 11.2%, 오르세미술관 38% 등 주요 미술관도 10%를 웃도는 입장료 수입 비중을 기록했다.  

사진정준모
마르세이유 지중해 문명박물관 샵에 계산하기위해 줄을 서있는 관객들 [사진=정준모]

그렇다면 우리나라 미술관 박물관 방문객 숫자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국립중앙박물관(용산)의 경우 2023년 입장객 418만285명이 5000원만 입장료로 내도 총 209억원, 입장료를 1만원으로 계산하면 418억원에 이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2024년 예산은 지방 13개 소속관을 포함한 총예산이 2325억5400만원이지만 지방관을 포함한 총관람객 숫자가 1047만명인 점을 감안 해 계산 해보면 1047억의 입장료 수입이 예상된다. 이는 입장료 수입으로 현재 지출의 약 45%를 충당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서울관만 해도 202만1771명에게 입장료 5000원을 받으면 101억원이고, 입장료를 1만원으로 하면 202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과천관, 덕수궁관, 청주관의 입장객까지 포함하면 2023년 연간 관람객이 320만9847명에 달해 입장료를 1만원으로 잡으면 총 입장 수입이 약 321억원에 달한다.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4개 관 총예산이 701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한 1년 예산의 46%를 스스로 충당이 가능하다. 이런 문화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블루 오션을 수수방관하고 있는 정부 특히 기획재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처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주경제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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