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페이가 국내에 상륙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추가 도입에 나서는 카드사가 없다. 낮은 단말기 보급률과 애플에 부담해야 하는 결제수수료를 감안하면 시장 경쟁력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31일 금융업권에 따르면 전업카드사 8곳(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하나·우리·BC카드) 중 애플페이를 도입한 카드사는 현대카드 뿐이다. 지난해 상륙 당시 국내 간편결제 생태계에 메기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제 시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3월21일 애플과의 우선계약을 통해 국내 애플페이 서비스를 출시했다. 출시 첫달 약 35만장이 넘는 카드가 신규 발급된 것과 아울러 회원수도 20만3000명 늘어나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후 ▲4월 16만6000명 ▲5월 14만5000명 ▲6월 12만5000명 ▲7월 12만명 등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이를 보였다. 이후 11만명대를 유지하면서 애플페이 도입 전과 비슷한 수준의 가입자 추이로 돌아섰다. 신규 고객 유입 효과가 4~5개월만 지속되자 애플페이 도입이 반짝효과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는 현대카드의 독점사용권이 만료되는 9월 이후 전업카드사들이 애플페이 도입에 나설 것이라고 봤다. 추가 애플페이 사용자가 더욱 늘어난다면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애플페이 도입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해서다. 실제로 대부분 전업카드사들은 애플에 사업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 확대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시장 진출에 나서는 카드사는 전무한 상태다. 애플 추가 수수료를 비롯해 근접무선통신(NFC) 단말기 설치 비용 등이 애플페이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애플은 현대카드를 상대로 결제 건당 0.15%의 추가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0.03%)이나 이스라엘(0.05%)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이미 한계 상황에 다다른 가맹점수수료로 인해 카드사 수익성 악화가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추가 수수료까지 부담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파악된다. 애플페이 도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편익(신용판매 비율·회원 수 확대 등)과 비용을 저울질한 결과 실익이 적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현대카드가 애플페이를 선제적으로 도입할 수 있던 배경에는 정태영 현대카드 회장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며 “나머지 카드사들은 단기 실적이 중요한 전문경영인 체제라 애플페이 도입을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낮은 EMV(유로페이·마스터카드·비자) 규격 NFC 단말기 보급률도 문제다. 국내는 대부분 마그네틱보안전송(MST)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애플페이 결제가 가능하려면 EMV규격 NFC 단말기로 교체해야하는데, 이를 교체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든다. 현재 단말기 설치비용은 가맹점이 부담하고 있다.
국내 전체 가맹점 NFC단말기 보급률은 10% 수준으로 저조하다. 일부 대형가맹점 외에 애플페이 결제가 불가능해 결제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애플페이 편의성을 높일 티머니 교통카드 기능 도입도 지지부진하다. 애플과 티머니는 지난해부터 교통카드 기능 도입을 두고 협상을 이어오고 있는데, 여전히 도입되지 않고 있다. 교통카드 사업자가 EMV 규격 단말기로 교체하면서까지 애플페이를 도입하기에는 얻을 수 있는 기대이익이 크지 않다고 봐서다.
또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본업인 신용판매 수수료율이 지속 악화하는 상황에서 추가 사업을 벌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후발주자의 경우 애플페이 도입을 통해 얻을 실익이 더더욱 크지 않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오태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애플페이 사례를 보면 간편결제를 통한 매출 진작효과가 이미 포화거나 소비자가 추가적인 서비스에 대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재고해야 한다”며 “부가 비용을 고려한 수익성 판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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