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우리는 1980~1990년대 감성을 자극하는 가슴 찡한 음악들과 함께하며 가사에 흠뻑 젖었습니다. 음악과 자라면서 미래에는 엄청난 명곡을 듣고 있으리라 꿈꿔왔죠. 그리고 오늘날 정말 우리의 귓가를 때리는 음악이 등장하긴 했는데요.
“탕탕 후루후루 탕탕 후루후루후루”
“야레야레 못 말리는 아가씨”
네, 지금은 2024년입니다.
2024년은 숏폼 콘텐츠의 시대인데요. 스마트폰 화면을 가득 채우는 짧은 길이의 동영상이죠. 대부분 15초 이상 1분 이내로 구성됐는데요. 대표적인 숏폼 플래폼은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입니다. 유튜브를 켜고 쇼츠를 한번 누른 뒤에는 1시간이 훌쩍 지나있다는 마성의 콘텐츠죠.
숏폼 콘텐츠가 유행하면서 영상도 음악도 모두 ‘숏폼’에 맞춰지게 됐는데요. 짧은 시간 내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켜야 하니 자극이 셀 수밖에 없죠.
흔히들 말하는 ‘중독성 있는 음악’, ‘중독성 있는 가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뤄져 있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후렴구’에만 있던 ‘중독성’이 음악 전체에 있다니, 얼마나 자극적일지 상상이 가시나요?
요새 이 자극의 끝판왕 두 곡이 릴스와 쇼츠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요. 어린 인플루언서와 묘한 두 남성의 음악입니다.
어린 친구들을 중심으로 최고의 음식 코스라는 ‘마라탕’과 ‘탕후루’가 등장하는 노래 ‘마라탕후루’인데요. 아니 ‘마라’와 ‘후루’만 등장하는 음악입니다.
‘마라탕’을 먹고 디저트로 ‘탕후루’로 이어지는 초등학생이 많은 만큼 ‘마라탕후루’는 그 말 자체로 유행이 된 상태였는데요. 이를 초등학생 인플루언서, 12살의 크리에이터 서이브가 받은 거죠.
지난달 25일 발매한 EP 앨범 ‘마라탕후루’는 중독성 있는 가사와 멜로디로 틱톡 뮤직 1위에 오르는 등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마라탕후루’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조회수 194만 회를 기록 중이죠. 물론 주인공이 ‘12살’의 초등생인 터라 유튜브 댓글은 정책상 중지된 상태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숏폼 콘텐츠 언급량으로 이미 충분한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데요. 마라탕과 탕후루처럼 달콤하고 매콤한 10대들의 짝사랑과 우정 속에서 변화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답게 ‘선배’와 가까이 지내고 싶은 풋풋함도 인기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음악과 함께 마치 ‘대사를 읊는 듯한’ 도입부 또한 ‘챌린지’를 하고픈 마음을 솟구치게 하죠.
“그럼 제가 선배 맘에 탕탕 후루후루 탕탕탕 후루루루루 탕탕 후루후루”라는 반복적인 가사와 함께 따라 하고 싶은 중독성 있는 안무까지… ‘숏폼 콘텐츠’ 그 자체인 ‘마라탕후루 챌린지’, 이미 하루에도 몇 번씩 ‘원하지 않아도’ 듣고 있는 요즘입니다.
현재 틱톡에는 ‘마라탕후루’의 안무를 따라한 챌린지가 여럿 게재됐고, 일본·중국·인도 버전까지 나온 상황이죠. 평가는 엇갈립니다. 중독성 있는 가사와 멜로디로 쇼츠와 릴스 같은 짧은 영상에 제격이라는 반응과 유치하고 단조로운 노래라며 비판하는 반응도 많은데요.
하지만 이 모든 비판을 ‘중독성’ 하나로 헤쳐나가고 있죠. 거기다 서이브가 방송인 이파니와 뮤지컬배우 서성민의 딸로 알려지며 화제가 됐고, 거기다 유치한 노래지만 12살의 노래라면 이해해줘야 한다는 ‘너그러움’까지 더해진 상황입니다.
이에 도전하는 묘한 음악도 있는데요. 이 묘함을 어찌 설명할 길이 없는 수준이죠. 왜 내가 부끄러운지… ‘공감성 수치’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곡 바로 ‘잘자요 아가씨’입니다. 다나카와 닛몰캐쉬가 결성한 듀오 ASMRZ가 발매한 싱글 제목인데요.
두 사람이 일본 만화풍의 쿨한 집사 콘셉트로 등장한 거죠. 이 음악을 들은 모든 이들은 하나같이 중독성을 넘어선 ‘중독되는 똥맛’이라는 격한 소감을 쏟아내는 중인데요. 유튜브에 공개된 뮤비는 현재 746만 뷰를 넘어섰습니다.
과한 말투, 과한 몸짓, 과한 생김새가 그야말로 과한 수치를 느끼게 하고 있죠. 한본어(한국어+일본어)를 섞은 느끼한 말투로 못 말리는 아가씨가 잠을 자지 않으면 집사들이 춤을 추겠다는 상황극이 벌어지는 곡인데요. 이 곡은 꼭 무대로 만나봐야 한다는 ‘나만 당할 수 없다’라는 추천이 이어지는 중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중독성 있는 노래와 고퀄 뮤비를 선보인 바 있는 과나가 작곡해 처음부터 흥행이 예상됐지만, 적중이 심하게 됐죠. 거기다 킹받는 안무 전문 ‘이짜나언짜나’가 선사한 안무는 왠지 모를 답답함을 더 추가했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14일에는 음악방송에도 출연했는데요. 이 안무와 노래를 음악방송에서 마주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죠. 더 놀라운 건 이들을 응원하러 나선 팬들의 ‘응원법’이었는데요. “응원법이 있었어?” 아니 “팬이 있었어”라는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죠.
음악방송에 출연한 그들은 그 과함을 더 극대화했는데요. 음악 방송 출연을 지져본 이들은 “도대체 그 아가씨는 왜 잠을 안 자서 음악방송까지 나오게 만드냐”, “아가씨도 이렇게 감당할 삶의 무게가 무겁다”, “춤추고 싶은 집사들에게 아가씨는 이용당한 거다”, “이것만큼은 절대 일본에 절대 양보할 수 있습니다”, “이거 보려고 사생활 보호필름 붙였어요”라는 등의 킹받는 반응들을 내놨습니다. 애써 외면하면서도 이를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을 한탄하면서 말이죠. 이 넘치는 인기(?) 덕에 ‘더 쇼’에 출연한 해당 방송분은 현재 유튜브 조회수 355만 회로 같은 날 출연한 아이돌들을 뛰어넘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본어가 사용된 터라 한국 팬들은 “이건 J팝”이라고 외치고, 일본팬들은 “이건 K팝이다”라며 그 출처를 서로 떠넘기는 중인데요. 음악방송 출연 후에는 중화권은 물론 일본에서 틱톡, 쇼츠를 타고 넘어온 대만, 일본인들까지 비슷한 감각의 댓글을 남기면서 이를 서로에게 더욱 떠넘기고 있죠.
최근 동남아에서 인기 K팝 안무를 단체로 따라 하는 ‘랜덤플레이 댄스’에도 등장해 충격을 줬는데요. 이 랜덤플레이 댄스 도전에 나선 동남아 팬들조차 ‘잘 자요 아가씨’ 도입부에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물론 ‘K팝 댄스 챌린지’에 이 곡을 포함하지 말라는 항의(?)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중독성은 곧바로 숏폼 콘텐츠의 기본이죠. 이 킹받는 노래와 댄스는 ‘숏폼’ 곳곳에 녹아들어, 애써 외면한 이들조차 공격을 받고 있는데요. 이에 스며드는 나 자신이 미워질 지경입니다.
이런 중독성과 묘함으로 ‘숏폼’을 지배 중인 두 곡은 그야말로 ‘호불호’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데요. 내가 생각한 2024년의 음악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땐 그랬었지”하는 또 다른 기억이 될 것은 분명하죠. 다만 시간이 흐른 뒤 이 음악을 2024년생에게 어떻게 설명해 줄지는 각자 짊어져야 할 큰 산인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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