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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멘트, 유럽과 ‘순환자원 재활용’ 격차 벌어져… “굴뚝산업 규제 탈피해야”

조선비즈 조회수  

[편집자주] 시멘트 선진국인 유럽은 온실가스(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이산화탄소 배출 산업으로 꼽히는 시멘트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다양한 산업에서 발생하는 순환자원을 시멘트 생산 재료로 재활용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설비 관리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도 한다. 온실가스 저감 이슈는 비단 유럽뿐 아니라 한국 시멘트산업의 당면 과제로 직면했다. 유럽의 시멘트 현장을 찾아 선진 기술을 살펴보고 국내 시멘트업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본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유럽 시멘트회사들은 저탄소형 시멘트 생산 구조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반면, 한국은 규제 장벽과 늦은 설비 투자로 유럽과 격차가 커지고 있다.

유럽 시멘트회사들은 1980년대부터 일찌감치 다양한 산업에서 나온 폐기물 즉 순환자원을 대체 연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석회석을 캐서 분쇄하고 화석연료를 넣어 시멘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은 유럽에 비해 10년 이상 뒤처진 1997년에 들어서야 폐타이어를 시멘트를 만들 때 열을 내는 대체 연료로 쓰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폐플라스틱과 폐비닐 등 폐합성수지를 대체 연료로 활용했다.

유럽은 친환경 기술 개발을 통해 저탄소형 시멘트 산업으로 구조를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유럽에 비해 설비 투자나 기술 개발이 더딘 상태다. 시멘트 원료와 연료로 순환자원을 재활용하는 비율은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시멘트협회가 분석한 지난 2020년~2021년 기준 국가별 순환자원 연료 대체율을 살펴보면 한국은 35%를 기록했다. 유럽연합(EU)의 평균치인 52%에 비하면 3분의 2 정도에 불과하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71%로 순환자원 연료 재활용 부문에서는 독보적인 1위를 기록했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있는 홀심 시멘트회사의 매너스도프 공장의 경우 90~95% 수준의 순환자원 연료 사용률을 나타냈다. 베어트홀트 크렌(Berthold Kren) 홀심 오스트리아 CEO는 “오스트리아 전체 대체연료 사용률은 지난 2022년 12월 말 기준 81.5%에서 지난해 12월 말 현재 기준 90%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오스트리아 남부에 위치한 한 공장의 경우 대체연료 사용률이 97~98%에 육박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3일(현지시각) 오후 2시 오스트리아 수도 빈 인근에 홀심 시멘트회사가 운영하는 매너스도프(MANNERS DORF) 시멘트 공장 전경. /박지윤 기자
지난 23일(현지시각) 오후 2시 오스트리아 수도 빈 인근에 홀심 시멘트회사가 운영하는 매너스도프(MANNERS DORF) 시멘트 공장 전경. /박지윤 기자

문제는 앞으로도 한국과 유럽의 순환자원 연료 재활용 격차는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유럽 정부에서는 2035년 까지 순환자원 연료 재활용률을 65%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유럽보다 15년 늦은 2050년까지 순환자원 연료 재활용률 60% 목표치를 설정했다. 이는 순환자원 연료를 재활용하는 데 필요한 대규모 설비 투자나 기술이 유럽에 비해 현실적으로 뒤떨어진다는 것을 감안한 것이다.

해외 수출이 거의 없는 국내 내수 산업에 집중된 한국 시멘트회사들도 뒷짐지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정부에서 해마다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시멘트회사가 채우지 못하면 ‘탄소 배출권’을 사서 시멘트를 팔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를 줄이지 못하면 탄소 배출권을 사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늘어나는 데 이를 원가에 그대로 반영하기는 힘든 구조다. 결국 시멘트를 많이 만들 수 있더라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지 못하면 해가 갈수록 판매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내 시멘트업계도 저탄소 시멘트는 곧 경쟁력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유럽과 격차를 줄이기 위해 대대적인 설비 투자에 나서고 있다. 한일현대시멘트는 강원도 영월 시멘트 공장에 약 2000억원을 투자해 2개의 킬른 예열탑 개조에 나섰다. 예열탑 개조가 모두 완료되면 순환자원 연료 재활용률은 기존 36%에서 66%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또 약 1000억원을 들여 영월 공장의 폐열 발전 시스템인 ECO발전 설비를 강화했다. 시멘트 소성공정에서 발생한 고온 배기가스를 보일러로 보내 연간 영월 공장에 필요한 전력의 약 30%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지난 16일 오후 강원도 영월군 한일현대시멘트 영월공장에서 폐열 발전을 담당하는 ECO발전 설비가 가동되고 있다. /박지윤 기자
지난 16일 오후 강원도 영월군 한일현대시멘트 영월공장에서 폐열 발전을 담당하는 ECO발전 설비가 가동되고 있다. /박지윤 기자

한국이 유럽의 선진 시멘트산업을 따라잡을 수 없는 제도적 한계도 있다. 시멘트 원료로 쓰이는 혼합재료와 혼합재 사용비율에서도 한국은 유럽에 비해 규제 강도가 높다.

시멘트 원료에 혼합재를 투입하는 것은 저탄소 시멘트를 만드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시멘트 제조 중간 단계인 클링커 사용량을 줄이고 혼합재를 늘리는 만큼 이산화탄소 배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멘트 1톤(t)을 제조하는 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약 700kg다. 이 중 클링커를 생산할 때 석회석을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전체의 약 60% 이상(시멘트 t당 420kg)을 차지한다.

유럽은 대체 원료를 다양하게 연구하고 쓸 수 있도록 한국보다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혼합재로 고로슬래그, 폐콘크리트, 실리카흄, 포졸란(2종류), 플라이애시(2종류), 번트쉐일, 석회석미분말(2종류) 총 10종을 자유롭게 혼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혼합재 사용율도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판매한 고로슬래그의 경우 최대 36%까지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한국산업표준(KS) 규정상 고로슬래그, 플라이애시, 포졸란, 석회석미분말 총 4종 가운데 2종만 제한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포틀랜드 시멘트의 혼합재 사용율을 보더라도 유럽의 3분의 1 수준인 10%로 제한하고 있다.

타이탄의 그리스 에프카르피아 시멘트 공장은 2017년부터 테살로니키에서 발생하는 폐콘크리트를 비롯해 다양한 혼합재를 25% 이상 시멘트원료로 재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폐콘크리트는 혼합재로 사용이 금지돼있는 데다 유럽처럼 혼합재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순환자원 재활용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시멘트산업은 ‘굴뚝산업’이라고 치부했던 시절에 정해진 규제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규제와 상관없이 한국 시멘트회사들은 기술 혁신이 더디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리스 타이탄 시멘트회사의 테살로니키 공장에서는 첨단 IT 기술 개발에 전체 투자 자산의 60%를 쏟아부어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실시간 최적화(Real-Time Optimization) 시멘트 공정 운영 및 관리 서비스를 창출해냈다. 심지어 1년 6개월 전부터는 미국 시멘트 공장에 실시간 최적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결과 타이탄은 디지털화를 통해 시멘트 생산 설비 평균 가동률을 97%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디지털화 이전 대비 생산률을 6~13% 향상시켰고, 약 5%의 에너지 저감도 이끌어냈다. 2020년에는 시멘트 제작과 공급망까지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디지털센터를 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공장에 구축해 운영 중이다. 타이탄은 자체 연구도 추진하면서 스타트업 회사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시멘트뿐 아니라 레디믹스(레미콘) 등 으로 AI 기술 적용 분야를 확장할 계획이다.

지난 21일(현지시각) 오후 그리스 아테네로부터 동남쪽 2시간 거리인 테살로니키州(시)에 위치한 타이탄社의 에프카르피아 시멘트 공장에 1만6000그루의 나무가 식재돼 있다. /박지윤 기자
지난 21일(현지시각) 오후 그리스 아테네로부터 동남쪽 2시간 거리인 테살로니키州(시)에 위치한 타이탄社의 에프카르피아 시멘트 공장에 1만6000그루의 나무가 식재돼 있다. /박지윤 기자

유럽 시멘트회사들은 친환경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수십년 동안 순환자원으로 만든 시멘트에 대한 꾸준한 연구를 통해 순환자원을 사용한 시멘트는 기존 시멘트와 품질 차이가 거의 없고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해온 것이다.

그리스 타이탄의 에프카르피아 공장에서는 시멘트 산업이 친환경적이라는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전체 부지의 30%에 숲(조림지) 형태의 청정 지역(Green area)을 조성했다. 채석장에 고유종인 나무를 18만 그루 이상, 공장에는 1만6000그루 이상의 나무를 식재했다. 시멘트 생산 공장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들을 통해 환경에 무해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홀심의 오스트리아 빈 매너스도프 공장에서도 질소산화물 등 다양한 유해물질 배출 가능성에 대한 환경 관련 우려에 관해서는 SNS와 신고센터를 통해 적극적인 의사소통에 나서고 있다. 해마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픈 데이’(Open Day)를 통해 공장을 공개하고 있다.

김진만 공주대 그린스마트건축공학과 교수는 “유럽에서는 시멘트 산업이 무기 순환자원 뿐 아니라 가연성(유기) 순환자원의 재활용에 가장 효율적이고 핵심적인 수단이라는 사회적인 인식이 퍼져있다”면서도 “국내의 경우 시멘트 산업의 연료전환 과정에서 유해물질, 미세먼지 등을 우려하는 환경 산업과의 충돌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유감스러운 부분”이라고 했다.

조선비즈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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