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先)구제, 후(後)회수’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야당 단독으로 국회 문턱을 넘은 가운데 국토교통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언론브리핑을 갖고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전세사기특별법이 야당 주도로 가결됐다”며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률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됐다. 재석 의원 170명 중 찬성 170표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앞서 개정안은 지난 2월 민주당 단독 의결로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박 장관은 “일반 국민에게 악성 임대인의 채무를 전가하는 것과 다름없음에도 충분한 협의와 논의 없이 개정안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며 이같이 전했다.
그러면서 개정안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박 장관은 “피해주택의 복잡한 권리관계로 공정한 가치평가가 어려워 공공과 피해자 간 채권 매입 가격을 두고 불필요한 분쟁을 일으킬 우려가 높고 채권 매입을 위한 예산 편성이 있어야 하는 등 현실적으로 집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도시기금을 재원으로 사용하는 건 부적절하다고도 언급했다. 박 장관은 “보증금 직접 보전의 재원은 주택도시기금”이라며 “주택도시기금은 무주택 서민이 내 집 마련을 위해 저축한 청약통장으로 조성된 것으로, 국민에게 돌려드려야 할 부채성 자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잠시 맡긴 돈으로 피해자를 직접 지원하게 되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다른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며 “정부는 마땅히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해야 한다. 다만 헌법상 법률을 집행해야 할 책무는 정부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장관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바로 구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앞으로 정부는 피해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이른 시일 내 시행이 가능한 지원 방안을 통해 전세사기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국회와 지속 협의하고 소통하겠다”고 전했다.
현재 전세사기 피해자만 1만7000여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정부의 피해 구제 노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박 장관은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뜻으로 오해 받을 수 있어 여야 간, 정부와 국회 간 충분한 대책 논의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을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 장관은 “야당이 제출한 법안은 마치 법안이 통과되면 바로 구제될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상 신속한 구제가 불가능하다”며 “집행을 담당하는 행정부 장관으로서 법안을 집행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린다”고도 했다.
그는 또 “재의요구에 여러 요건이 있는데 집행 가능성이 가장 큰 부분”이라며 “통상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이나 토지수용을 위해 가치평가를 할 때 굉장한 다툼이 발생하고 합의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채권자가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고 매수자 의사도 반영할 방법이 없어 객관적 평가가 어렵고, 평가가격이 나와도 합의가 일반 토지보상보다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야당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22대 국회에서 재발의할 경우 국토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재발의를 한다면 충분한 논의를 거치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국민들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선구제 후회수’라는 단어에 묻히는 게 아니라 누가 어떤 과정으로 보상을 하는지 많은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으로 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29일 임시국무회의를 개최해 이날 통과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21대 국회 임기는 29일로 끝나기 때문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 해산 전 재표결이 사실상 불가능해 개정안은 폐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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