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 후 핵연료)을 처리할 때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이 최악이다. 대중과 충분히 논의를 거쳐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기구(NEA) 윌리엄 맥우드 사무총장은 28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BPEX)에서 열린 ‘제7차 지층처분장에 대한 국제회의(ICGR)’에서 이같이 말했다. 사용 후 핵연료 처분 관련 법적 기반을 갖추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우리나라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저장시설 건설을 위한 특별법(고준위법) 제정을 추진 중이지만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될 상황이다.
그는 미국 유카 마운틴 프로젝트 사례를 언급하며 조급함을 떨쳐 낼 것을 주문했다. 앞서 미국 정책 결정자들은 절차를 무시하고 네바다주 유카마운틴을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부지로 최종 선정해 반대에 부딪혔고 수년간 공전을 거듭한 바 있다.
맥우드 사무총장은 한국도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다며 우선 건식 저장시설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1980년대 미국도 사용 후 핵연료 저장조 포화 이슈가 불거졌지만 건식 저장시설을 운용하자 우려가 사라졌다”며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서 건식 저장시설을 최소 100년간 사용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처분 시설 마련 전까지 사용 후 핵연료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 수요가 늘면서 심층처분시설(DGR) 등 효과적인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방안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우리나라는 고준위법 제정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여야 간 대치로 상임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22대 국회로 넘어가면 발의부터 전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한다. 처분 시설 건립에 최소 30년 걸리는 상황에서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사용 후 핵연료 등 고준위 방폐물을 처리할 곳이 없다 보니 폐기물이 원전 내에 계속 쌓이고 있다. 1978년 고리원전 1호기 상업 운전이 시작된 이래 누적된 고준위 방폐물은 1만8900t에 달한다.
정부는 21대 국회 회기 내에 법 통과가 안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김진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전략기획관은 “많은 의원들이 고준위법에 대한 필요성을 이해하는 만큼 (22대 국회가 시작되면) 이른 시일 내에 재발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기획관은 “NEA 회원국 간 협력을 강화하면서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역량을 증진하는 동시에 특별법 제정,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확보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