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대규모 사직을 시작한 지 100일을 맞은 가운데 의료계는 정부를 향해 의대 입학정원 증원 정책을 재고할 것을 재차 요청했다. 이를 강행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의료계를 붕괴시킨 책임자로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책을 1년 유예한 뒤 미래에 부족한 의사 수를 과학적으로 추계해 증원 여부와 규모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국회를 향해선 의사를 비롯한 의료 전문가 집단이 포함된 국회 내 협의기구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통령실 레드팀께: 의료개혁, 이대로 좋습니까’를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엔 강희경 비대위원장과 곽재건 비대위 부위원장, 방재승 전 비대위원장 등이 자리했다. 레드팀이란 대통령실에서 조직 내 취약점을 발견해 경고하는 내부 자정 기구를 의미한다.
강 위원장은 정부를 향해 “지금은 의대 증원이 지지율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대로 강행한다면 윤 대통령은 의료계를 붕괴시킨 책임자로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올바른 의료개혁을 위해선 합의를 원칙으로 하는 ‘타협의 절차’가 중요하다”며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용기도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의대 증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간 정부와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했지만 정부가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작스레 2000명 증원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교육 현장에서 증원된 의대생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곽 부위원장은 “언론에서 카데바(연구 목적으로 기증된 해부용 시신)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는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기초의학을 가르칠 교수 수급이나 강의실 확보 등 부족한 것이 태반”이라고 설명했다.
국회를 향해선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의료 전문가 집단이 포함된 국회 내 협의기구를 설치해 달라는 것이다. 최근 법원이 행정소송에서 정부 손을 들어주면서 국회가 의대 증원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에서다. 다만 지난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의대 증원에 대해 정부와 공감대를 형성해 이 같은 요구가 유의미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같은 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에서 정부 방침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회의를 주재한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형식과 의제에 구애받지 않고 의료계와 대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변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오늘 열리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전달체계·지역의료 전문위원회를 비롯한 보건의료 발전을 위한 논의에 의료인들이 동참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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