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행에서 64억원 규모의 배임 사고가 터지면서 이석용 농협은행장의 거취에 금융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금융사고를 낸 계열사 대표이사(CEO)의 연임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한 지 보름 만에 농협은행 배임 사고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농협 안팎에선 이 행장의 연임 불발은 물론 중도 사퇴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에선 강 회장의 ‘내부통제 관리 강화 대책’이 사실상 금융 계열사 CEO의 인사권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2일 농협은행은 공시를 통해 53억원 규모의 공문서위조 및 업무상 배임, 11억 규모의 업무상 배임 등 2건의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공시에 따르면 53억원 규모 공문서 위조·배임 사고는 2020년 8월 11일부터 2023년 1월 26일까지, 11억원 규모의 업무상 배임은 2018년 7월 16일부터 2018년 8월 8일까지 각각 발생했다. 농협은행은 인사위원회를 열고 해당 직원에 대한 징계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번 배임 사건은 강 회장이 금융사고 발생 CEO 연임 제한을 발표한 지 보름 만에 공개돼 주목을 받고 있다. 강 회장은 지난 7일 “최근 농협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다수 발생으로 농협의 공신력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면서 ‘중대사고와 관련한 대표이사 연임 제한’ 등 범농협 차원의 내부통제와 관리 책임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강 회장의 강도 높은 대책이 농협은행의 배임 사고와 묘하게 맞물려 들어간 셈이다.
이미 농협 내부에선 이 행장의 연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농협중앙회장 교체기에 농협은행장이 연임한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배임 사고가 공개되면서 이 행장의 조기 사퇴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앞서 전임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취임 이후 임기가 9개월가량 남아있던 이대훈 당시 행장을 전격 교체했었다. 이 행장이 이 전 회장에게 발탁됐다는 점은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강 회장이 취임한 지 3개월여가 지났으니 계열사 CEO들도 물갈이되는 것이 맞다는 의견도 내부적으로 있다”며 “현재 지역 농협 조합장을 대상으로 농협중앙회 이사진이 새로 꾸려지고 있다. 새 이사진들은 강호동 체제 강화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이 농협 지배구조 문제를 놓고 종합감사를 진행하고 있어 이 행장이 중도 사퇴하긴 어렵다는 전망도 많다. 다만 금융권에선 강 회장의 금융사고 관리 강화 방안이 금융 계열사 CEO 인사권을 강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강 회장이 NH금융투자 대표 선출 때 중앙회 인사를 보내려고 한 것은 농협금융지주 계열사에 자신의 조력자가 없었기 때문이다”이라며 “강 회장의 CEO 연임 제한 발표 후 공교롭게 과거 농협은행 배임 사건이 공시됐는데 이미 이 행장의 리더십을 흔드는 목소리가 내부적으로 일고 있다”고 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