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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21] 영유아 건강검진이 망설여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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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혜인] 요즘 내 아이는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을 관찰하는 데 열중한다. 혼자 그네를 타는 아이, 원통형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 킥보드를 타는 아이, 트램펄린에서 점프를 하는 아이 등.

내 아이는 그네를 좋아하지만 혼자 타는 걸 무서워해서 내게 안겨서 탄다. 원통형 미끄럼틀에 누가 들어가는 걸 보면 관심을 보이지만 역시 두려운 모양이다. 킥보드와 트램펄린도 시도하지만 한 발 구르기도, 두 발 뛰기도 못해서 실망감을 느끼는 듯하다. 다른 아이들을 한참 관찰하던 아이가 갑자기 내게 코알라처럼 안겨만 있으려고 했다.

아이가 잘 놀지 않아 집으로 돌아오다가 아쉬운 마음에 어느 쇼핑몰에 있는 놀이 공간에 데려갔다. 폭신한 매트로 만들어진 낮은 계단과 미끄럼틀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더니 그제야 아이는 신나게 뛰어놀았다.

발달이 느려도 자기가 잘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 울적함을 느끼는 듯하다. 남들처럼 해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한 듯도 하다.

나 역시 일상의 모든 경험에서 내 아이가 느리다는 사실을 매순간 확인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영유아 건강검진을 4차까지 마치고 더이상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유아 건강검진 제도는 만 6세 이하 영유아에게 시기별로 총 8번 건강 상태와 발달 상태를 자부담 없이 점검받을 수 있도록 한다. 내 아이 건강검진을 국가가 무료로 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첫 건강검진 때에는 근처 소아과에 예약해 두고 평소 궁금했던 사항을 메모했다가 당일 의사에게 모두 물어보았다. 그렇게 전문가에게 확인을 받고 돌아오는 초보 엄마의 마음은 아주 든든했다.

그러다 3차 검진부터 하는 발달선별검사(K-DST)를 맞닥뜨렸다. 말 그대로 아이의 발달 정도를 평가하는 검사다. 대근육, 소근육, 인지, 언어, 사회성, 자조 영역마다 8개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가 평소 관찰한 바를 토대로 문항에 응답하면 ‘빠른 수준’, ‘또래수준’, ‘추적검사 요망’, ‘심화평가 권고’로 결과를 알려 준다.

내 아이는 3차 검사 때 ‘심화평가 권고’가 나왔고, 정밀검사 결과 발달 지연 진단을 받았다. 영유아 건강검진으로 발달 지연 문제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으니 참 고마운 제도임에는 분명하다.

문제는 이미 발달 지연으로 정기적인 추적 관찰 및 치료 중인 아이도 다음 건강검진 때 다시 발달선별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내 아이는 24개월이 되었을 때 대학병원에서 베일리 검사와 언어평가를 재실시했다. 그렇지만 24개월에 실시하는 4차 영유아 건강검진에서도 발달선별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먼저 대근육운동 영역이다. “제자리에서 양발을 모아 동시에 껑충 뛴다.” 전혀 할 수 없다. “계단의 가장 낮은 층에서 양발을 모아 바닥으로 뛰어내린다.” 전혀 할 수 없다. 8개 항목 중에 이 두 가지는 전혀 할 수 없기에 대근육운동 영역에서 심화평가 권고 결과가 나왔다.

두 번째로 소근육운동 영역이다. “숟가락을 바르게 들어(음식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입에 가져간다.” 하지 못하는 편이다. “유아용 가위를 주면 실제로 종이를 자르지는 못해도 한 손으로 종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가위 날을 벌리고 오므리며 종이를 자르려고 시도한다.” 전혀 할 수 없다. 역시 심화평가 권고이다.

인지 영역에서는 “‘많다-적다’와 같은 양의 개념을 이해한다”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언어 영역은 8가지 항목 중 7가지 항목이 전혀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사회성 영역과 자조 영역도 모두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았다.

어차피 발달 지연 진단을 받고 치료 중임을 알렸기에 의사도 별다른 말은 길게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의사는 검사 결과지는 제공해야만 하므로 모든 영역에서 ‘심화평가 권고’가 나온 종이를 출력해 주었다.

발달 지연 아이를 둔 다른 가정도 사정이 다르지 않은 듯하다. 느린 아이를 둔 부모 모임 카페에 “영유아 건강검진, 꼭 받아야 하나요?”하는 문의가 자주 올라오는 이유다.

내 아이는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검사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할 수 없는 것들을 자주 확인하게 될 텐데, 아이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해야 할까.

나는 교사로서 학생을 가르칠 때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왔다. 하지만 납득할 만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앞으로는 다를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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