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시멘트 선진국인 유럽은 온실가스(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이산화탄소 배출 산업으로 꼽히는 시멘트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다양한 산업에서 발생하는 순환자원을 시멘트 생산 재료로 재활용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설비 관리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도 한다. 온실가스 저감 이슈는 비단 유럽뿐 아니라 한국 시멘트산업의 당면 과제로 직면했다. 유럽의 시멘트 현장을 찾아 선진 기술을 살펴보고 국내 시멘트업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본다.
“한국의 시멘트 산업은 현재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하지만 유럽 시멘트 산업의 탈탄소 공정 수준은 또 다른(한국보다 선진적인) 세상입니다.” (피터 호디노트(Peter Hoddinott) 전 유럽시멘트협회장)
지난 23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비엔나 인근에 위치한 홀심社 매너스도프(MANNERS DORF) 시멘트 공장에서 진행된 기자단 간담회에서 피터 전 유럽시멘트협회장은 “온실가스(이산화탄소) 감축이라는 세계적인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시멘트 규제 기준을 성능 중심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산화탄소(CO₂)를 배출하기 위한 비용은 유럽 국가 기준 시멘트 1톤(t)당 6~8유로에 그치는 수준이다. 한국에서 드는 비용도 8870원 정도로 유럽과 비슷한 상태다. 시멘트 공장을 짓는 데 필요한 자본(Capital)은 2억5000만~3억유로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뒤인 2034년에는 유럽연합(EU)의 온실가스 저감 규제 정책에 따라 CO₂를 배출하기 위한 비용이 시멘트 1t당 120~170유로로 훌쩍 뛸 전망이다. EU 기준에 맞는 탈탄소 공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추가 설비 투자금액은 초기 자본을 훌쩍 뛰어넘는 4억5000만유로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피터 전 유럽시멘트협회장은 “한국에서 생산하는 시멘트 가격은 현재 t당 평균 75유로 수준으로, 유럽의 동일 기준 시멘트 가격(90유로)보다 저렴하다”면서도 “지난해 10월 EU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한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CBAM)를 오는 2026년부터 본격 시행할 경우 EU로 수출할 때 시멘트 생산 과정에서 배출한 탄소량에 상응하는 인증서를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CBAM 제도를 통해 EU 국가에 수출할 때도 생산 비용을 EU 현지 생산 비용과 같은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결국 CO₂ 배출을 줄이지 못하고 그대로 유지할 경우 EU로 수출 시 시멘트 생산에 필요한 비용이 평균 150유로 더 늘어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유럽과 미국 등 시멘트 선진국들은 시멘트 관련 규격 기준을 전통적으로 정해놓은 비율을 따르도록 하는 ‘금지적인(proscripive) 기준’에서 성능(peformance) 기준으로 변경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성능 기준이란 극한 환경에서도 50년을 견딜 수 있는 콘크리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콘크리트 제조 28일 후 40메가파스칼(MPa) 이상의 강도를 달성하도록 하는 기술 등이다.
김진만 공주대 그린스마트건축공학과 교수도 “기존 시멘트 재료의 화학적인 구성과 범위 설정에 그쳤던 규정이 물리적으로 발현 가능한 성능 목표치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첫 번째 성능 중심 콘크리트 기준인 ‘ASTMC 1157′을 최근 발표했다. 이 규정을 보면 시멘트 원료로 쓰이는 재료의 화학적인 조성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았다. 다만 포틀랜드(수용성) 시멘트의 분말도, 길이 변화, 강도 등 성능에 관한 기준을 나열하고 있다.
이처럼 성능 중심의 시멘트 재료 사용 규제를 발판으로 세계 여러 국가들은 CO₂ 저감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방출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시멘트 회사에게 이윤적으로도, 전 인류적 관점에서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은 매우 큰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피터 전 유럽시멘트협회장은 “선진국들은 건축 폐자재 등 시멘트 원료를 대체할 만한 물질을 사용하거나 CO₂를 적게 배출하는 대체 연료를 찾고 있다”며 “이 과정들을 통해 클링커(시멘트 제조 중간 단계에 사용하는 제품) 1t당 CO₂ 생산량을 기존 850kg에서 539kg으로 감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석회석 사용량을 줄이고 혼합재 사용 비율을 늘리는 방식은 효과적인 탄소저감 방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이산화탄소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클링커를 줄이는 대신 철강 부산물인 슬래그를 투입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클링커 50%와 슬래그 50%를 합치면 훌륭한 품질의 대체 시멘트가 된다. 시멘트 1t당 기존 720kg의 CO₂를 생산했다면, 클링커를 줄이고 슬래그를 투입하면서 CO₂ 생산량을 360~405kg로 줄일 수 있다.
현재 유럽에서는 고로슬래그, 폐콘크리트, 실리카흄, 포졸란(2종류), 플라이애시(2종류), 번트쉐일, 석회석미분말(2종류) 총 10가지의 혼합재를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럽 최다 판매 시멘트에 사용되는 고로슬래그 혼합재의 경우 최대 사용 함량은 36% 수준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시멘트 기준을 제시하는 한국산업표준(KS)상 국내 최다 판매 시멘트인 일반 포틀랜드 시멘트에 사용 가능한 혼합재 비율을 10%로 한정하고 있다. 혼합재로 사용 가능한 재료도 고로슬래그, 플라이애시, 포졸란, 석회석미분말 총 4가지 종류 가운데 2가지만 허용한다. 유럽에 비하면 혼합재 재료 사용과 사용률에 있어서 더 큰 제약을 받고 있는 셈이다.
국내 시멘트업계의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럽과 비슷한 수준으로 KS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만 교수는 “심도있는 연구 과정을 거쳐 적정하다고 입증된 시멘트 대체 원료를 국내에서도 활용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며 “또 혼합재 사용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KS 기준을 적극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며 “현재 경직된 국내 시멘트 관련 KS를 보다 포괄적이며 탄소중립적인 방향으로 변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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