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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새로운 이민·난민 협정,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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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EU 집행위원회
자료=EU 집행위원회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주와 망명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견고한 법적 틀을 마련했습니다. 10년 이상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연대와 책임 사이의 균형, 이것이 유럽의 방식입니다.”

로베르타 메촐라(Roberta Metsola) 유럽의회 의장은 4월 10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제출한 이민·난민 협정(The Pact on Migration and Asylum)이 유럽의회에서 승인된 후 이렇게 말했다. 이전까지 법안 가결 가능성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10개 텍스트로 구성된 협정은 각각의 법안을 투표에 부쳐야 했는데, 유럽의회 내 극좌 및 극우 진영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찬성 301~452표, 반대 154~272표 그리고 소수의 기권으로 모두 가결됐다. 가장 아슬아슬하게 통과된 법안은 위기와 불가항력 규정으로 301 대 272로 승인됐다. 어쨌든 모든 법안이 다 통과됨으로써,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EU집행부는 말년에 큰 정치적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됐다.

신속하고 단호한 자격 여부 결정, 회원국 선택지 넓혀

당초 이 법안이 10개 텍스트로 구성된 종합 법안이 된 것은 2020년 9월 EU 집행위가 최초의 제안서를 만든 이래 3년여 동안 새로운 아이디어와 규정이 계속 추가되면서 복합 협정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 2021년 10월에는 EU 블루카드(Blue Card) 지침이 개정됐고, 12월에는 EU 난민 기구가 창설됐다. 2022년에는 EU 송환 담당 조정자 임명, 고급 인력 유치 패키지 제안, 자발적 연대 기구 출범, 재정착 프레임워크와 자격 인정 조건이 도입됐다. 2023년 12월에는 이민·난민 신청자 정보 공유, 스크리닝, 망명 절차, 위기 상황 시 대응책 등이 만들어졌다. 이후 해당 조치를 모두 묶어서 회원국 간 정치적인 합의를 통해 협정으로 완성했다.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 펠로, 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 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KIEP) 원장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 펠로, 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 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KIEP) 원장

이번에 가결된 이민·난민 협정은 EU의 국경 방어를 강화하면서도 자격 심사와 송환 절차를 신속하게 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망명 신청에 대해 EU 국경과 도착지에서 정해진 기한 내에 기존보다 더 빠르게 심사하고, 불인정 시 송환 절차가 더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했다. 도착지에서 신원 확인 절차를 개선해 보안·취약성·건강 검사를 의무화한다. 회원국은 망명 신청자에 대해 책임을 담당할지, 금전적 기여를 할지, 운영 지원을 제공할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위기 상황에서 더 나은 대응이 되도록 절차를 정비하고 제삼국에서 온 난민의 재정착을 위한 새로운 자발적인 계획도 포함됐다. 내용을 훑어보면 다루는 범위가 넓고 정교하게 설계돼 있지만, ‘불법 이민과 난민 문제로 큰 고통을 받아왔던 유럽이 지금까지 이 정도의 정책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민과 난민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회원국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일관되게 시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힘든 측면이 있다. 예컨대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는 EU 난민 정책의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최악의 상황으로 바뀐 시리아 난민 사태, 후유증 여전

2010년 아랍의 봄과 2014년 이슬람국가(IS)의 창설은 시리아의 내전을 불러왔다. 시리아 내전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서방이 지원하는 반군 그리고 IS의 삼파전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시리아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이에 따라 다수의 난민이 생겼다. 당시 인구 2200만 명 중에서 시리아를 탈출한 민간인은 670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130여만 명은 튀르키예와 에게해를 경유해 유럽으로 이동했다. 그래프에서 확인하는 바와 같이 2015년 EU로 유입된 이주민 중 난민으로 추정되는 불규칙 이민(irregular migration)은 170만 명을 넘어서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대다수는 시리아 난민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알바니아, 에리트레아 등에서도 난민이 유입됐다.

이렇게 급증한 난민은 첫 도착지인 중부 유럽 국가들에서 큰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시리아 난민 등장은 5세기 훈족의 침입 이후 몽골과 오스만튀르크 등 동쪽에서 오는 이민족에게 공포를 갖고 있는 중부 유럽 시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동안 처음 도착한 국가에서 망명 신청을 하게 되어 있는 더블린 협정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예컨대 헝가리는 처음에 국경 폐쇄로 대응하다가 독일로 가는 난민에 대해서만 국경을 개방하는 밀어내기 전략을 사용했다. EU 회원국 간에 인구 비례로 난민을 배정하자는 제안도 여러 회원국의 강한 반대로 사실상 적용되지 못했다.

2015년 한 해 동안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받은 독일은 난민을 주별로 배분하는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치안 불안, 재정 압박, 극우 정당의 발호 등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해 어려움을 겪었다. 16만여 명의 난민을 받아 EU 회원국 중 인구 대비 가장 높은 비중(약 2%)의 난민을 수용한 스웨덴은 이후 범죄가 급증하는 등 현재까지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몇 년 전 스톡홀름에 방문했을 때 카페나 식당에서 항상 지갑이나 핸드폰을 챙겨야 한다는 당부를 들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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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실패한 이민정책, 교훈 삼아야

유럽은 난민 관리뿐만 아니라 이민정책에서도 여러 차례 실패했다.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영국과 프랑스의 이민자 폭동 사태, 일련의 유럽 출신 이민자의 테러는 사회 통합에 실패한 유럽 이민정책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최악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일까.

이민은 사람이 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이주 정책은 반드시 후유증을 남긴다. 예컨대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급하게 추진된 이주 정책은 단기적으로 노동력 부족은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이주민 또는 그 후손들은 사회에 적응하는 데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이주민이 초청국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은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또 슬럼화된 대도시 주변 지역은 게토화된 이주민 집단 주거지가 되기 쉽다. 이럴 경우 이주민은 시간이 지나도 그 사회에 통합되지 않고 격리될 수밖에 없다. 또, 이주민은 정주 여건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현지인의 행태를 그대로 닮아가기 때문에, 인구 증가나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한 이주 정책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효과가 사라지게 된다.

EU의 정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주정책은 종합적인 접근 방식을 사용해 정교하게 추진돼야 한다. 이민·난민 기본법 제정과 총괄 조정의 역할을 담당할 정부 조직이 조속히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5%가 해외 이주민으로 구성돼 있지만 통합되고 일관된 이주민 정책이 없다. 유럽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봐서는 안 된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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