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가득찬 객석은 익숙하지만, 공연장에 홀로 남는 것은 매우 낯설고 드문 경험이다.
독일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의 작품은 이런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어떤 장소의 이면이 갖고 있는 가치를 사진에 담았다.
회퍼 작가의 개인전 ‘르네상스(RENASCENCE)’가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2(1·2층)에서 개막했다.
그는 지난 50여 년 동안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도서관과 박물관, 공연장 등 문화적 장소를 정밀한 구도와 디테일로 담아내는 데 주력해왔다.
2020년 국제갤러리 부산점 개인전 이후 4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코로나 기간에 개보수 중이었던 건축물, 그리고 과거에 작업한 장소를 재방문해 작업한 신작 16점을 선보였다. 작가는 전시를 위해 지난 22일 방한했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강렬한 붉은 장막과 붉은 객석의 독일 베를린 코미셰 오페라하우스가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회퍼 작가는 “화려한 공간에는 과대평가되거나 과장 되는 것이 아닌 단순함이 내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도와 여백 등을 통해 화려함과 단순함을 사진 한 장에 모두 담아냈다. 회퍼 작가는 “여백의 크기는 사진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전시된 코미셰 오페라하우스 다섯 작품 중 세 작품은 가로 2.5m, 세로 1.8m의 대형 사진이다.
작가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를 촬영할 때, 그곳을 철저하게 조사한다. 후보정을 극도로 제한하고 인위적인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코미셰 오페라의 원형이 되는 19세기 후반의 건축물은 2차 세계대전 공습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1947년 전후 동독 산하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재개관했다. 이후 1960년대에 재건축됐고, 1980년대에 복원 과정을 거친 바 있다. 2023년부터 현재까지는 리허설과 백스테이지 공간을 확장하는 등 개보수가 진행 중인데, 회퍼 작가는 2022년도에 이 장소를 방문해 촬영했다.
K2 2층에서는 베를린에 위치한 또 다른 모더니즘의 랜드마크인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의 리노베이션 이후 모습을 선보인다.
1965년과 1968년 사이에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인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설계로 지어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빛과 유리의 전당’으로 불리는 서구 모더니즘의 아이콘이다.
유리와 철재로만 제작된 미술관 건물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미국 망명 30년 만에 모국에 남긴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그가 일생 동안 일관되게 추구해 온 ‘적을수록 많다’라는 건축 철학이 담겨 있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2015년부터 6년에 걸쳐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지휘 하에 기존 인테리어 자재의 보존을 원칙으로 한 보수 작업을 진행했다.
‘최대한 기존 비전 그대로’를 신조로, 건축물의 개별 구성요소들을 해체한 후 청소 및 복원 과정을 거쳐 원래 위치에 복구하는 등 새로운 건축가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기반시설의 보존과 강화 등에 주력했다.
회퍼 작가는 복원 직후인 2021년 이곳에 방문, 재정비를 거친 공간 곳곳을 카메라 렌즈로 포착했다. 유리창에 비친 고층건물이 작품에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흔적들을 암시한다. 프랑스 파리 카르나발레 박물관과 스위스 장크트갈렌 수도원 부속 도서관을 촬영한 작품도 전시됐다.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수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선보인 작가는 2003년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마틴 키펜베르거와 공동으로 독일관을 대표했다. 2018년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의 사진공로상을 수상했으며, 오는 9월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2024 케테 콜비츠 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작가는 현재 쾰른에 거주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작품의 주요 소장처로는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 스톡홀름 근대미술관,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마이애미 루벨 패밀리 컬렉션, 취리히 프리드리히 크리스찬 플릭 재단 등이 있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