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재판이 제2라운드에 돌입한다. 1심은 이 회장의 ‘무죄’로 마무리됐지만, 약 3년5개월간의 재판기간 중 이 회장의 경영활동에 제약이 생겼던 만큼 길어지는 재판 일정이 ‘뉴삼성’ 행보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김선희·이인수)는 27일 오후 3시부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 14명의 항소심 첫 변론준비기일을 진행한다.
이 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미래전략실 주도 하에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계획·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회계부정·부정거래 등을 저지른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공판준비 절차는 피고인과 검찰의 입장을 확인하고 추후 입증 계획을 논의하는 절차로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은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재판이 본격화되면 이 회장의 출석 빈도도 높아질 전망이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 1심이 진행된 약 3년5개월 동안 107회 열린 재판(선고공판 포함)에 총 96회 출석했다.
이에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지속된 재판 출석으로 삼성의 ‘경영공백’을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재판 장기화로 삼성의 대형 인수합병(M&A) 결정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이 있어도 수조원이 투입되는 대형 M&A나 투자를 쉽게 결정할 수는 없다”며 “삼성그룹의 경우 총수 리스크로 하만 인수 이후 이렇다 할 대형 M&A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사법리스크’를 일정부분 해소한 이 회장은 선고 이튿날인 지난 2월 6일 중동·동남아 해외 출장차 출국한 데 이어 같은 달 16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업장을 방문하는 등 곧바로 국내외 현장 경영에 속도를 냈다.
설 연휴인 지난 9일 말레이시아 스름반에 있는 삼성SDI 생산법인을 찾아 “어렵다고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투자해야 한다”며 “단기 실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과감한 도전으로 변화를 주도하자”고 당부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업장 점검에서는 “현재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더 과감하게 도전하자”며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미래로 나아가자”고 독려했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와, 지난달에는 카를 람프레히트 자이스 CEO,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신임 CEO 등과 잇달아 회동하며 최근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서기도 했다.
자이스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EUV(극자외선) 기술 관련 핵심 특허를 2000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광학 기업으로, 반도체 업계 ‘슈퍼 을’로 불리는 ASML의 EUV 장비에 탑재되는 광학 시스템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 EUV 장비 1대에 들어가는 자이스 부품은 3만개 이상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본인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경영 행보에 속도를 내면서 오랜 기간 정체된 ‘뉴삼성’ 시계추도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경영 불확실성에 따른 기업들의 경영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회장이 또다시 재판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사법리스크’로 발이 묶이면서 ‘뉴삼성’ 행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단체들은 이 회장의 무죄 선고 직후 “삼성그룹은 그동안 사법리스크로 인한 경영상 불확실성을 벗어나 적극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 국가 경제 발전에 더욱 매진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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