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 옷을 입는 게 아니네.” (60대 주부)
“100일 된 우리 애기 꽃 보여주려고 의정부에서 왔어요.” (40대 아이엄마)
지난 24일 오후 3시쯤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광진구 뚝섬 한강공원은 꽃구경에 나선 시민들의 활기로 가득했다. 평소 돗자리나 텐트, 한강라면 냄새로 채워 졌던 한강공원 풍경과 사뭇 달랐다.
공원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정원은 화려한 장미로 꾸며져 단연 돋보였다. 평일 한낮에도 이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한 60대 주부는 “초등학생 때 뚝섬 유원지에 소풍 오고 50년 만에 왔는데 깜짝 놀랐다”며 “조경이 기대 이상이다. 분수대에 예쁜 장미들 보니 흥이 끓어오른다. 정말 즐겁다”라고 들뜬 기분을 전했다.
박람회에서 입상한 전문 작가들을 비롯해 기업·기관, 학생·시민·외국인이 만든 76개 정원이 각기 다른 매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KB증권의 정원에는 금괴가, 통일부가 만든 정원에는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들의 사연과 역사가 있는 식이다.
HD현대산업개발이 꾸민 정원 ‘도심속의 보석’은 유리블럭으로 막힌 공간에 고요한 음악이 울려퍼지도록 해 명상 분위기를 조성했다. “스피커가 어디에 설치된거냐”며 정원을 주의깊게 살피던 한 시민은 “다른 곳은 화려하기만 한데 이곳은 오브제부터 다르다”며 연신 감탄했다.
특히, 입상한 정원에는 해설가가 배치돼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창엽·이진 부부 작가의 정원인 ‘회복의 시간’에 방문하자 시민정원사 이영자씨(74)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씨는 “고층 건물들 사이에 1m정도 땅을 파서 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며 “옛날 소색(모시·삼베·무명·명주 등에서 비롯된 자연 그대로의 색)처럼 정제된 색으로 자연과 연결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가 부부가 와서 매일 정원을 관리하는데 자식들 같아서 나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정원사들은 박람회 성공의 숨은 주역이다. 정원 외 공간을 꾸미는데 손을 보태고, 직접 정원을 만들기도 했다. 박람회가 끝난 후에도 잡초 제거 등 관리를 도맡는다.
서울시는 이번 박람회를 통해 시민 참여로 만들어낸 정원을 시민이 감상하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나아가 서울 전역에 정원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포부다. 2026년까지 1년에 330개의 정원을 서울 시내에 조성한다는 ‘정원도시 서울 프로젝트’의 첫 발인 셈이다. 서울시가 이번 박람회에서 정원 작품 심사보다는 ‘시민 대정원’으로 만드는 것에 집중한 이유다.
정원으로 가득 찬 공원을 방문한 시민들 모습도 다른 한강 공원과는 달랐다. 산림청 ‘도시숲여행’ 참가자들이 노란색 옷으로 맞춰입고 정원 곳곳을 탐색했다. 숲해설사 조홍식씨는 “이번 주에 200명 정도 이곳을 방문했다”며 “평상시에는 나무 위주로 설명했는데 정원으로 꾸민 공간을 보니 호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또 “보통 해외 정원을 비교해서 많이 설명하는데 이곳에는 태국, 중국에서 만든 정원도 있어 각나라 특색을 직접 볼 수 있었다”며 “평상시 못 본 식재들이 많아 공부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곳곳에 있는 휴식 공간은 공원 본연의 역할을 지켰다. 편안히 누워있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정원을 감상하기만 하면 힘들 것”이라며 “각 자치구에서 의자를 끌어와서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친구들과 소풍을 왔다는 한 60대 주부 A씨는 “오면서 그늘막이랑 돗자리 빌려야 하는 것 아닌가 했는데 텐트도 다 무료였다”고 했다. A씨를 이곳에 이끌고 왔다는 B씨는 “박람회가 너무 좋아서 3번째 방문이다”며 “어제는 아코디언 연주가 대단했다”고 했다.
박람회 상설 전시는 오는 10월 8일까지다. 다음 달에는 ‘드론 라이트 쇼’와 시장으로 정원을 보며 휴식하는 ‘한강풀멍타임’ 등 각종 프로그램이 예정됐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