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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A 씨는 1년 전 은행을 통해 3억 원가량의 전세자금을 빌렸다. 금리가 곧 하락할 것이라는 시장 전망에 고정금리 대신 변동금리를 택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금리는 떨어지지 않았다. 대출 신청 당시 3%대였던 금리는 어느새 4%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월급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납부해야 하는 월 이자는 90만 원에서 115만 원으로 늘었다. 가정의 터전인 집을 지키려면 이자를 꼭 갚아야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 연체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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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전세자금대출 연체가 크게 늘어난 것은 고금리 상황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데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등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한 차주들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가계부채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전세자금대출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 당국도 DSR 확대 적용을 검토하고 있지만 자칫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올 1분기 4대 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98조 5519억 원으로 집계됐다. 올 1분기 취급했던 전체 가계대출 잔액(563조 원)의 5분의 1에 달하는 수치다. 은행 입장에서는 매달 이자만 갚는 구조의 전세자금대출이 부실화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판단에서 전세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려왔던 것이다. 게다가 전세대출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에서 최대 100% 보증을 제공하고 있어 은행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적다. 통상 전세 보증금의 80%까지 손쉽게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존 고객들은 6개월 변동금리 기준으로 대출받는 경우가 대다수였다”며 “고금리 시기에는 6개월마다 이자가 급격히 오른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이어 “전세대출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까닭에 이자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다”고 전했다.
전세대출·깡통전세 등의 문제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늘어난 것도 연체율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HUG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사고액은 1조 9062억 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1조 830억 원)과 비교하면 무려 76%(8232억 원)나 늘었다. 세입자에게 전세금 반환을 요청받은 HUG가 올 1~4월 내어준 돈인 대위변제액은 은 1조 265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124억 원)보다 55.8% 상승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전세 시장은 투자자 및 실수요자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장이라 전세대출 연체율 역시 전세사기·깡통전세 등의 요소들은 서로서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를 위해 전세대출에도 DSR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등의 경우 DSR 규제를 적용받아 연간 원리금 상환 총액이 연소득의 40%를 넘을 경우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없지만 전세대출에는 이런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세자금대출이 DSR 규제를 적용받는다면 대출 규모 자체가 줄어들면서 연체율이나 건전성 등 개선 효과도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주현 지지옥션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보면 전세자금대출에도 DSR이라는 동일 규제를 적용해야 하는 게 맞다”면서도 “다만 전세대출에 대한 약한 규제가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로 작용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 역시 전세대출에 DSR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올 초 발표한 업무계획에서 전세대출에 DSR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서민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우려해 아직까지는 본격 도입하지 않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전세대출을 DSR 규제에 포함하겠다고 한 업무계획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다만 적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서민 실수요자들의 불이익이나 피해, 전세대출 추이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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