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6시, 서울 강남구 코엑스 라이브플라자. 35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올랐다.
연주자들의 얼굴엔 긴장과 설렘이 가득했다. 무대에 선 모습이 다소 낯설어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긴장의 시간도 잠시, 무대의 중앙에 선 지휘자가 공연의 시작을 알리자 아름다운 선율이 펼쳐졌다.
연주자들은 웅장함이 돋보이는 ‘In to the storm’을 시작으로 작곡가 메러디스 윌슨(Meredith Willson)의 ‘Music man’,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재즈곡 ‘New York New York’, ‘My way’를 연이어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공연의 막바지에는 가수 비틀즈, 이문세의 명곡과 한국 민요를 재해석해 코엑스를 거닐던 외국인 관광객, 쇼핑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기도 했다.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오니윈드오케스트라. 비(非)전업 연주자들이 모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다. 가입 조건은 간단하다. 음악을 사랑하며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성인. 최연소·최고령 단원은 각각 25세와 70세. 대학생, 직장인, 은퇴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음악을 연결고리로 함께하고 있다.
비전업 오케스트라지만 그저 즐기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한 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8곡을 연이어 연주할 정도로 수준급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 비결은 단연 연습량이다. 바쁜 일상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은 모여 합을 맞출 정도로 음악에 진심이다.
그들이 본업도 아닌 취미생활에 이토록 매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니윈드오케스트라 운영진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키즈 오케스트라 졸업생이 만든 오케스트라 동호회
오니윈드오케스트라는 지난 2016년 ‘올키즈스트라’ 졸업생들이 창단했다. 올키즈스트라는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이 문화예술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다. 이곳에서 음악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 음악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뜻을 모은 결과물이 오니윈드오케스트라다. 오니(ONY)라는 이름에는 든든한 언니, 오빠라는 뜻이 담겼다.
오니윈드오케스트라는 현재 외부인에게도 입단 기회를 제공하며 동호회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클라리넷, 플루트, 트럼펫, 트롬본, 튜바, 색소폰 등 관악기 연주자 30여 명이 활동 중이다.
악단에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누구나 오디션 없이 자발적으로 입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전공자는 물론이고 합주 경험이 없어도 가입할 수 있다. 실력이 미숙한 단원이 합류해 생기는 문제는 없었을까. 오니윈드오케스트라의 창립 멤버인 김하림 단원은 “열린 형태로 운영하는 이유는 오니의 미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니윈드오케스트라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개인적인 성장을 경험하고 합주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과정을 추구해요. 전문 연주자가 아니기에 연주는 미숙할 수 있죠. 하지만 서로 격려하고 함께하는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장롱 속 악기 꺼낸 사람들… “서툴지만 즐거움이 가장 커”
오니윈드오케스트라 단원 중 상당수는 어린 시절 악기를 배웠지만 성인이 된 이후 연주할 기회가 없던 이들이다. 플루트 파트에 합류한 지 6개월째라는 정예진 단원 역시 마찬지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약 6년간 플루트 레슨을 받았어요. 고등학교 입학 후엔 아예 연주할 기회가 없어 항상 아쉬웠죠. 그러던 중 직장 동료의 소개로 오니윈드오케스트라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합주 경험이 없던 예진 씨에게 오케스트라 적응은 쉽지 않았다. 처음 한 달간은 제대로 된 합주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른 악기 소리가 들리면 자신의 파트가 헷갈리고 박자도 놓치기 일쑤였다고. 두 달이 넘도록 연습에 매진한 뒤 비로소 박자를 맞춰 합주할 수 있는 연주자로 성장했다고 한다.
직장인의 황금 같은 여가시간을 투자하며 연주에 매진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예진 씨는 고민 없이 “즐거웠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난 6개월을 되돌아보면, 정말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합주가 어렵게 느껴졌지만, 같은 파트원 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셔서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취미를 만들 수 있었죠. 보다 많은 분이 제가 느낀 즐거움을 경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가장 빛나는 순간은 ‘지금’… “신규 단원 기다려요”
코로나19가 풍토병으로 전환된 후 오니윈드오케스트라는 어느 때보다도 바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니윈드오케스트라 운영진은 “지금이 오케스트라 창단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 생각한다”며 설렘을 드러냈다.
“코로나 유행 기간 연습도 어려워지고 단원 수도 감소해서 어수선한 시간을 보냈거든요. 단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칙도 손보고 홍보, 재정관리를 강화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넘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최근에는 신규 단원도 늘고 공연 기회도 많아져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오니윈드오케스트라의 첫 번째 목표는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이다. 더 오래 많은 단원이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신규 단원을 유치해 공연 시 특정 파트 연주자가 부족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한다는 설명이다.
2024년 정기 공연이라는 숙제도 남아있다. 인당 월 2만원의 동호회비로만 운영되는 소규모 오케스트라가 1년에 한 번 공연을 올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을 터. 수 개월간 서른여 명의 단원이 시간을 맞춰 연습을 진행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오니윈드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이미 열정을 쏟을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연주회를 무사히 마치면 해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으로 가슴이 뛰어요. 이 경험이 다음 연주회를 기대하고 시간과 열정을 투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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