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11차례 연속 동결…여전한 물가 불안
美 연준 금리 인하와 중동 정세 변화 ‘주목’
가계부채 증가 전환-내수 부진 변수 가능성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1차례 연속 동결하면서 역대 최장기간 동결을 기록 중이다. 한은이 금리 인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물가 안정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결국 앞으로 금리 인하 여부도 물가 안정이 관건인 상황으로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 시점과 중동 정세 변화 등 대내외적 환경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의 11차례 연속 기준금리 동결로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향후 금리 인하 시점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전날인 23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존 연 3.50%인 기준금리를 그대로 동결했다. 지난해 2월부터 4~5월, 7~8월, 10~11월과 올해 1~2월 4월에 이어 11회 연속, 기간으로는 1년 4개월 째로 역대 최장기간 동결이다.
한은이 금리를 묶은 배경은 물가가 불안정한 모습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월 2%대로 떨어졌지만 과일을 비롯한 농축수산물이 10.6%나 올랐다.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도 5개월 연속 오름세를 나타냈다.
한은은 올해 수정 경제전망에서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월 전망치와 같은 2.6%로 예상하면서도 하반기 물가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평가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하반기 중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그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은 지난 4월에 비해 훨씬 커졌다”며 “하반기 중 금리 인하 기대가 있는데 물가 상방 압력을 받고 있어서 시점이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한은이 이번에도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불확실성을 강조하면서 언제 어떤 조건들이 갖춰져야 이뤄질 지가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으로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미국의 경제 상황과 중동 정세 변화 등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미국 경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기간의 초과저축에 의한 수요 압력 ▲고정금리 모기지에 따른 고금리의 영향 축소 ▲강건한 노동시장 등의 영향으로 높은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미국의 근원 소비자물가상승률도이 최근 1분기 동안 약 4%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러한 경기 호조가 전쟁, 미·중 갈등, 기후 변화 등의 글로벌 공급측면에서의 생산 교란 요인과 맞물릴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경우, 미국 물가상승률의 둔화 속도가 지연되면서 이와 연관된 기준금리 인하 시점도 뒤로 밀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그동안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해 온 달러화 강세, 고물가, 고금리 현상이 당초 예상보다 긴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3.4%)이 둔화하면서 금리 인하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지만 연준 위원들이 여전히 금리 인하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선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중동 정세 악화 가능성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다. 전문가들은 중동정세 불확실성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중동 전체의 전면전 확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19일(현지시각) 이란 라이시 대통령이 탄 헬기가 추락해 사망하면서 사고 관련 음모론이 확대되는 등 이란-이스라엘간 전쟁 발발로 인한 중동 정세 악화 우려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만약 중동 지역 정세가 악화될 경우, 고환율·고유가로 인한 원자잿 가격 상승으로 국내 물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하고 있는 데다 내수 부진이 심화될 수 있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이 총재도 23일 금통위 회의에서 “내수 부문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심하기 때문에 물가가 완전히 안정된다고 확신이 들어야 금리 수준을 정상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4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전월 대비 4조1000억원 늘었다. 가계대출은 지난해 가파르게 증가하다가 은행권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조치 등으로 올해 1월 9000억원에서 2월과 3월에 각각 1조9000억원, 4조9000억원씩 줄어들며 2개월 연속 감소했지만 4월 들어 다시 증가세로 전환됐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할 경우 가계 부채 증가세를 부추길 수 있다. 특히 부동산 시장으로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 금융 불균형이 누적돼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하지만 수출 호조에 대비되는 내수 부진 지속은 추가 변수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최근 반도체 중심의 수출 증가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민들이 당장 피부로 느끼는 내수는 부진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수출 호조로 경제 성장률이 높게 나오더라도 내수 부진이 지속된다면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 명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류진이 SK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내수 경기 평가에 대한 톤을 예상보다는 나쁘지 않았던 수준으로 언급했다는 점, 물가가 안정화될 경우 현재의 제약적인 금리 수준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점 등을 바탕으로 해석해볼 때 성장률 상향 조정에도 불구하고 연내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는 여지들은 남겨뒀다”고 분석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금리 인하가 4분기 1회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면서 한은의 선제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에 부담스러운 대외 여건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어 “금통위가 올해 1회, 내년 2회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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