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내서 빚을 갚는 카드 대환대출 규모가 1년 사이 6000억원 증가했다. 고물가·고금리·경기침체 삼중고로 카드값을 갚지 못하는 서민이 급증한 것이다. 연체율도 점점 높아지고 있어 카드사들의 건전성에 비상이 걸렸다.
24일 여신금융협회·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9개 카드사의 카드론 잔액은 역대 최대치인 39조964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월(37조2593억원)과 비교하면 1년 사이 2조7051억원이 증가한 셈이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등 금융권이 건전성 관리에 나서며 대출 문턱을 높이자 카드론을 찾는 서민이 많아진 것이다. 카드론은 일반 신용대출보다 대출이 간편해 서민의 급전창구로 손꼽힌다.
카드론은 평균 금리가 14.26%(지난달 기준)에 달할 정도로 수익성이 높은 상품이다. 하지만 카드론 이용자 대부분이 중·저신용자라 연체율이 치솟으면 건전성 우려가 높아지는 양날의 검이다. 연체율이 높아지면 카드사는 대손충당금을 더 쌓아야 하고, 대손충당금이 늘어나면 순이익은 줄어든다.
올해 1분기 현대·삼성카드 연체율은 각각 1.04%와 1.16% 수준이지만, 하나·우리·KB국민카드는 2%를 넘긴 상황이다. 8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현대·KB·롯데·우리·하나·비씨)의 1개월 이상 연체액 규모는 2021년 12월 기준 1조2216억원에서 지난해 12월 2조924억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회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6개월 이상 연체액은 같은 기간 1135억원에서 1879억원으로 65.5% 증가했다.
특히 7개 전업카드사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은 1조7441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1448억원)보다 6000억원 가까이 늘었다. 대환대출 잔액이 늘어난다는 것은 부실 대출이 늘어났다는 뜻으로, 카드사들의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KB국민카드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 때문에 카드사들은 연체율 관리에 사활을 쏟고 있다. 지난해 8개 카드사의 대출채권 매매이익은 5848억원으로 전년(2642억원)보다 121% 증가했다. 대출채권을 매각하면 연체율은 하락한다. 연체 채권을 보유하다가 직접 회수할 수도 있지만, 좋은 조건으로 매각하는 게 수익성·건전성 개선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업계에선 2003년 ‘카드대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카드사들이 대출을 줄이는 등 자금공급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위험 신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아직 이러한 상황까진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해 1분기 현대카드의 카드론 취급액은 1조6756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1383억원)보다 47.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삼성카드는 24.6% 증가한 2조4274억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하나카드는 1조224억원에서 5376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들이 부실채권을 상·매각하는 등 연체율 관리를 충실히 하고 있고, 서민에게 계속해서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라며 “카드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으로 보기는 어렵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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