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에서 1시간 남짓, 제주 동부 성산과 중문 그 언저리에 자리한 표선면. 이곳에는 평화롭고 고요한 숨은 볼거리를 찾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바닷바람을 만끽해 본다. 이른 아침, 표선항에 가니 주황색으로 둥둥 떠 있는 부표 사이로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진귀한 장면이다. 다른 해녀들보다 조금 늦게 나온 젊은 해녀와 이야기도 나누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본다. 서울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이곳 제주에서 해녀학교를 졸업했다는 3년 차 새내기 해녀는 해맑게 웃으며 손짓해 주고는 물속으로 첨벙 들어간다.
표선에서 30분 정도 달리면 닿는 물영아리오름에선 소들이 초원에서 풀을 뜯는 장면이 펼쳐진다. 끔벅끔벅 눈을 깜빡이다 스르르 잠드는 소들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저 멀리 소가 있는 목장에 산책을 나온 노루들도 눈에 띈다. 이따금 꿩이 모습을 드러내며 소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제주민속촌’과 180여 종의 허브와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 ‘제주허브동산’, 둥글넓적한 원뿔모양 분화구가 있는 ‘백약이오름’까지 표선에는 둘러볼 만한 명소가 가득하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해비치 리조트가 있다.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들어선 호텔과 리조트는 고객들이 쉼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리조트와 그 인근에서 즐길 수 있는 웰니스 프로그램까지 함께하면 더없이 평화롭고 여유로운 제주여행이 가능하다.
해비치 리조트는 지난해 7월 개관 20주년을 맞아 10개월간 재단장 끝에 오는 29일 새롭게 고객과 만난다. 720억원을 들여 건물 골조만 남기고 가구, 창호 등을 전면 개보수해 새로운 리조트로 변신했다.
객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커다란 창이다. 창문을 크게 키워 제주 풍광이 한 폭의 작품처럼 한눈에 담긴다. 객실 내부는 단순하게 꾸몄다. 요란한 장식품 없이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실내장식으로 리조트 분위기를 살렸다. 제주의 멋진 외경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적 장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215개 객실 구조도 최신 트렌드에 맞춰 변경했다. 아이 동반 투숙객이 많고 대가족 중심이던 예전과 달리 성인 투숙객이 집처럼 편하게 쉴 수 있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을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하고 서비스와 시설을 고도화했다.
취사 시설도 인덕션과 싱크대만 남기고 대폭 줄였다. 주방을 줄이는 대신 거실을 넓히고 객실 내부에 새로운 벽을 세워 방과 방 사이 공간을 분리해 프라이빗한 느낌을 더했다. 8인실 등 대형객실을 줄이고 2개의 침실을 갖춰 최대 4인 기준 객실로 바꿨다.
레스토랑은 총 3곳(한식과 양식, 일식)으로 구성하고 야외 수영장은 어린이가 들어올 수 없는 성인 전용 사계절 온수 풀로 탈바꿈했다. 고객을 위한 웰니스 프로그램도 달라졌다. 표선 해안가를 달리는 ‘선라이즈 런’과 ‘자전거 라이딩’, 숲길이나 오름을 걷는 ‘숲 트레킹’, 일몰에 즐기는 ‘선셋 요가’ 등은 전문 강사의 인솔하에 무료로 제공한다.
김민수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대표는 “20년 전에는 가족 3대나 친인척들이 함께 와서 객실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수요가 많았지만, 이제는 가족 구성도 줄었고 라이프 스타일, 여행 패턴 등이 변화하면서 리조트나 숙소 자체에 대한 기대가 크게 달라졌다”며 “해비치 리조트의 노후화에 따른 개보수뿐 아니라, 시설과 서비스 전반을 재단장해 해비치 리조트 자체가 제주의 대표적인 휴양 목적지가 될 수 있도록 변화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해비치리조트는 고객이 중문관광단지 등 주요 명소와 떨어진 특성을 활용해 ‘체류형 휴식’을 선호한다는 점에 착안해 리조트에 반영했다. 한적하면서도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제주 동남부의 이점을 살려 북적이는 관광지가 아닌 리조트 안에서 온전한 휴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꾸몄다.
새로운 내부 인테리어에 절제된 톤과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적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평화로운 표선마을의 풍경 그 자체가 갤러리 속 작품처럼 느껴지도록 공간을 설계했다. 시각적인 부분부터 촉각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이 여유롭고 편안하다.
해비치 리조트는 ‘파인 다이닝’ 급으로 미식을 강화했다. 스시 오마카세와 정통 관서식 스키야키를 만날 수 있는 ‘메르&테르’,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이는 양식 레스토랑 ‘이디’, 셰프가 직접 구워주는 제주돼지 등 고품질의 육류를 맛볼 수 있는 ‘하노루’가 있다.
특히 일식당 메르는 인테리어에 편백(히노끼) 테이블을 활용해 고즈넉한 분위기와 깊은 향을 모두 담아냈다. 제주의 식자재를 활용한 오마카세와 히노끼가 공간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는 느낌이다. 또 테르는 호텔에서 관서식 스키야키 오마카세를 선보이는 유일한 곳이다.
해비치 리조트는 전 객실 스위트룸으로 이뤄졌다. 객실은 △주니어 △주니어 테라스 △클래식 △그랜드 △마스터 △시그니처(바람·노을·돌) △팜 △오션 등 총 10개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시그니처 노을 객실은 커다란 원형 욕조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어린이 교육·놀이공간이던 ‘모루’는 마스터 스위트 이상 투숙객이 이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라운지로 변신했다. 지하 1층 키즈존 놀멍과 요리교실 등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은 유지한다. 아이와 함께 투숙하는 경우 리조트 대신 해비치호텔 내 수영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제주도 전역을 둘러보며 관광지 곳곳을 찾는 여행보다는 한곳에 머무르면서 자연을 느끼는 ‘힐링 여행’이라는 테마를 본격적으로 실현할 차례.
오후 3시 체크인 후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포레스트 트레킹’에 나섰다. 계절에 따라 숲길이나 오름을 걷는다. 오늘의 목적지는 ‘물영아리오름’. 리조트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져 있지만, 프로그램 신청자라면 차편 걱정은 내려놔도 좋다. 직원이 직접 차로 오름까지 왕복 이동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오름을 함께 오르면서 사진도 찍어주고 오름 곳곳을 안내해 준다.
물과 수건을 챙겨 오름을 향해 힘차게 걷는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 주는 것은 초원에 여유롭게 거닐고 있는 소들이다. 까만 소 한 마리와 송아지도 보인다.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지만, 울타리 가까이에 풀을 뜯으러 온 소들을 바로 앞에서 만날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노루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날은 소들 사이에 노루 서너 마리가 뛰노는 장면을 목격했다. 하얀 엉덩이를 내밀고 재빠르게 뛰어다니는 노루와 소들 사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꿩도 보인다. 자연 속 동물농장 그 자체다. 쨍한 날씨에 노루가 뛰어노는 것을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높이 뻗은 삼나무 숲길을 따라 오름 꼭대기를 향한다. 키 큰 나무들이 울창하게 뻗어있어서 걷는 내내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좁은 나무 사이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보면 길게 늘어선 ‘잣성’이 우리를 맞아준다. 돌을 쌓아 땅의 소유를 구분하기 위해 쓰였다는 잣성은 산꼭대기부터 저 아래까지 길게 이어진다.
다음 날 아침. 자전거를 타고 표선 해안가를 달리기로 마음먹는다. 마음에 드는 자전거를 하나 고르고 안전을 위해 헬멧까지 착용한다. 그리고 인솔자를 따라 해안가로 나선다.
숙소에서 벗어나자마자 표선해수욕장이 펼쳐진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자전거 사이로 가르면 마음마저 탁 트이는 느낌이다. 아침부터 자전거로 운동도 하고 예쁜 풍경을 눈에 담으니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잠깐잠깐 멈춰서 윤슬을 바라보며 사진도 한 장 남겨본다. 왕복 1시간 코스로 이어지는 바이크 라이딩. 차를 타고 갈 때 보이지 않았던 표선 곳곳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이크 라이딩을 마친 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즐긴다. 그리고 이내 요가 스트레칭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잔디 위에 요가매트와 폼롤러를 이용해 뭉친 근육을 천천히 풀어준다. 바닷바람을 느끼며 햇살 아래 누워있는 이 시간, 잡념이 사라지니 마음이 절로 정화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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