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만 8조 넘게 증가
국민은행 수익률 ‘선두’
퇴직연금 센터 운영 등
수수료 수익 확대 ‘사활’
국내 5대 은행의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금이 올해 들어 석 달 동안에만 두 배 가까이 불어나면서 17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이 전국 점포망을 토대로 공격적 영업을 펼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퇴직연금 관리 역량을 강화해 두 자릿수의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쥐꼬리’란 불명예를 씻어내는 모습이다. 은행들이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로 비이자이익 확대에 비상이 걸린 만큼 퇴직연금 사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행보는 더욱 분주해질 전망이다.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올 1분기 말 기준 16조7034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95.7%(8조1667억원) 급증했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사전에 지정한 상품으로 적립금을 자동 투자하는 제도다.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이 대상이다. 그간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원리금보장상품에만 투자하고 방치하면서 평균 1%대라는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에 정부가 수익률 제고를 위해 지난해 7월부터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것이다.
은행권 디폴트옵션 시장에서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양강 체제가 구축된 모습이다. 신한은행의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지난 1분기 말 기준 4조8613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93.5% 늘어나며 1위를 수성했다. 이어 국민은행이 4조5867억원(증가율 90.6%)으로 뒤를 바짝 쫓고 있다.
하나은행이 2조7068억원(97.5%)으로 농협은행은 2조5944억원(80.0%)으로 3·4위 자리 다툼을 벌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1조9541억원으로 142.3% 늘어나며 5대 은행 중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은행들은 전국 영업망을 기반으로 고객을 적극 유치하면서 해마다 적립금을 수조원씩 불리고 있다. 특히 퇴직연금 전담센터를 운영해 관리 역량을 크게 강화한 점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민은행은 지난 2018년부터 ‘퇴직연금 자산관리 컨설팅센터’를 운영해왔다. 저금리 정기예금의 리밸런싱(자산 재분배)과 퇴직연금 상품의 수익률·만기 안내 등의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퇴직연금 관련 유선 상담을 전담하는 ‘손님관리센터’를 개설했고 올 2월에는 서울 여의도에 VIP고객 대상 ‘연금 상담센터’를 열기도 했다.
농협은행은 퇴직연금 관련 부서를 확대·운영하고 있다. 지난 2022년 고객 수익률을 전담하는 ‘퇴직연금수익률관리반’을 신설했으며 이듬해 ‘퇴직연금수익률관리센터’로 확대했다. 같은 해 7월 퇴직연금 사후관리를 담당하는 ‘퇴직연금지원센터’를 추가 신설했다. 우리은행도 지난 2022년 ‘연금고객관리센터’를 신설했다. 퇴직연금 가입 고객의 자산과 수익률 제고를 위해 대면·비대면 지원 업무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은행들의 디폴트옵션 상품 수익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면서 정부의 목표 수익률(6~8%)을 크게 상회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현재 은행권 디폴트옵션 상품 수익률 측면에서는 국민은행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들 은행의 포트폴리오별 상품을 보면 국민은행의 ‘고위험1’의 연 수익률이 20.01%로 은행권에서 가장 높았다. 20%의 수익률을 거둔 것은 국민은행이 유일하다. 아울러 ‘중위험1’과 ‘저위험2’의 연 수익률도 각각 14.26%, 9.78%를 기록하며 같은 상품 라인업 중 가장 높은 성과를 보였다.
하나은행도 ‘고위험1’과 ‘중위험1’에서 각각 16.04%, 12.52%를 기록했다. 우리은행은 고위험과 중위험 모든 상품에서 두 자릿수의 수익률을 거뒀다. 우리은행의 ‘고위험1’과 ‘고위험2’는 각각 17.93%, 15.47%로 ‘중위험1’과 ‘중위험2’는 각각 11.15%, 12.40%를 기록했다. 농협은행도 ‘고위험1·2’ 모두 15%대로 ‘중위험1’과 ‘중위험2’는 각각 12.42%, 10.02%를 나타냈다.
퇴직연금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은행들은 고객 수익률 제고에 보다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은행들은 홍콩H지수 ELS 불완전판매로 일부 신탁 상품의 판매를 중단하면서 비이자이익 확대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 퇴직연금 사업에 보다 힘을 실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아울러 지난달부터 IRP 디폴트옵션 상품 수수료에 운용 성과를 연동하는 제도가 시행된 만큼, 은행들이 고객 퇴직연금 관리를 소홀히 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은행들은 지난달 운용 손익을 고려한 수수료 부과 기준을 마련해 퇴직연금 계약 약관을 일제히 개정했다. 은행들이 자체 설정한 기준지표에 운용 수익률이 미달할 경우 수수료를 덜 받게 된다. 디폴트옵션 수익률이 낮아지면 수수료 수익도 줄어드는 장치가 마련된 만큼, 은행들이 퇴직연금 관리 역량을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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