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란 말이 상스러운 표현임을 나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럼에 이렇게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정말 프라하의 몇몇 환전소는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수수료를 받기 때문이다.
환전이란 서로 다른 화폐를 필요에 따라 바꾸는 행위다. 바꿔주는 측이 자선사업가가 아닌 다음에야 수수료를 요구할 수 있다. 같은 화폐를 살 때와 팔 때 차이가 나는데 그 차액이 바로 수수료임을 나도 안다.
여행을 앞두고 환전할 때면 이 수수료를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애쓰는데, 내 경우 가장 비싼 수수료를 물고 환전한 것은 오사카에 갔을 때였다. 여행을 앞두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시중 은행에
서 환전하지 못하고 일단 공항으로 갔다. 그런데 늦은 시간이라 공항 환전소마저 다 문을 닫은 게 아닌가.
결국 엔화를 한 푼도 못 가지고 일본 땅에 내리는 황당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원화를 엔화로 바꿔주는 곳이 있어 한시름 놓기는 했다. 하지만 수수료가 어찌나 비싼지, 날강도에게 눈 뜨고 뜯긴 기분이었다.
이후 로마에서 또 한 차례 그런 일을 겪어 ‘절대로 현지에서는 환전하지 말아야지’ 하는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종종 생기게 마련이다. 몇 년 전 유럽 4개 도시(이스탄불, 비엔나, 프라하, 베를린) 여행에서는 이스탄불과 프라하에서 환전할 수밖에 없었다. 튀르키예와 체코 돈을 한국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일단 유로화로 환전한 다음, 그것을 현지에서 바꿔야만 했다.
이스탄불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공항에서 환전할 때 약간 수수료가 비쌌지만 그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므로 감수하기로 했다. 시내에서는 ‘커미션 0%’라고 쓰인 곳을 찾아가 환전했는데, 큰 차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비교적 좋은 조건으로 환전한 셈이었다.
프라하에서는 버스터미널에 내려 우선 급한 만큼만 환전했다. 공항이나 터미널의 환율이 안 좋을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프라하 중심가로 나가면 환전소가 많을 테고, 거기서 조건이 좋은 환전소를 찾아 돈을 바꾸면 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구시가 광장 환전소를 찾았다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코루나(체코 화폐 단위)를 살 때와 팔 때의 차이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여행자가 1유로를 살 때는 28.38코루나를 주어야 하고, 팔 때는 15.01코루나를 받는다고 했다. 거의 배에 달하는 이런 차이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앞서 버스터미널에서는 1유로당 26코루나를 받았는데, 이곳은 1유로당 15.01코루나만 준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환전할 수 없었다. 너무 손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환전 자체를 안 할 수도 없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환전한 금액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리저리 환전소를 찾아다니며 내걸어놓은 환율을 비교했다. 마침내 카를대교 근처에서 제일 좋은 조건을 제시한 환전소를 찾았다. 1유로에 28.56코루나를 준다니 매우 반가웠다.
그런데 100유로를 환전하고 나온 남편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아무래도 돈을 잘못 받았는지 너무 적다”고 했다.
무슨 일일까 싶어 영수증을 꼼꼼히 살펴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환율은 밖에 내걸어놓은 대로 계산해주었는데, 수수료로 뭉텅 떼어갔다. 최종 환전에서 받은 돈은 구시가 광장의 시세와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 환전소에서 다른 여행자가 목청을 높이며 따지는 게 보였다. 우리는 말도 안 통하거니와 자신들 수수료가 그렇다고 영수증에 명백하게 적어놨으니 따질 말도 없고 하여 분노를 삼키고 돌아서기로 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프라하의 환전소에 ‘듣보잡’이란 점잖지 못한 수식어를 붙인 것이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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