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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21] 프라하의 ‘듣보잡’ 환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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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대교 근처의 듣보잡 환전소. 내 건 환율은 후한 것 같지만, 수수료를 엄청나게 떼어 결과적으로는 앞의 환전소와 차이가 없었다. 여행자만 바가지를 쓰는 셈이다. /신양란 작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란 말이 상스러운 표현임을 나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럼에 이렇게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정말 프라하의 몇몇 환전소는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수수료를 받기 때문이다.

환전이란 서로 다른 화폐를 필요에 따라 바꾸는 행위다. 바꿔주는 측이 자선사업가가 아닌 다음에야 수수료를 요구할 수 있다. 같은 화폐를 살 때와 팔 때 차이가 나는데 그 차액이 바로 수수료임을 나도 안다.

여행을 앞두고 환전할 때면 이 수수료를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애쓰는데, 내 경우 가장 비싼 수수료를 물고 환전한 것은 오사카에 갔을 때였다. 여행을 앞두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시중 은행에

프라하 구시가지 환전소에서 내 건 환율표. 유로화의 경우, 살 때와 팔 때 거의 배 차이가 난다./신양란 작가

서 환전하지 못하고 일단 공항으로 갔다. 그런데 늦은 시간이라 공항 환전소마저 다 문을 닫은 게 아닌가.

결국 엔화를 한 푼도 못 가지고 일본 땅에 내리는 황당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원화를 엔화로 바꿔주는 곳이 있어 한시름 놓기는 했다. 하지만 수수료가 어찌나 비싼지, 날강도에게 눈 뜨고 뜯긴 기분이었다.

이후 로마에서 또 한 차례 그런 일을 겪어 ‘절대로 현지에서는 환전하지 말아야지’ 하는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종종 생기게 마련이다. 몇 년 전 유럽 4개 도시(이스탄불, 비엔나, 프라하, 베를린) 여행에서는 이스탄불과 프라하에서 환전할 수밖에 없었다. 튀르키예와 체코 돈을 한국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일단 유로화로 환전한 다음, 그것을 현지에서 바꿔야만 했다.

이스탄불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공항에서 환전할 때 약간 수수료가 비쌌지만 그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므로 감수하기로 했다. 시내에서는 ‘커미션 0%’라고 쓰인 곳을 찾아가 환전했는데, 큰 차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비교적 좋은 조건으로 환전한 셈이었다.

프라하에서는 버스터미널에 내려 우선 급한 만큼만 환전했다. 공항이나 터미널의 환율이 안 좋을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프라하 중심가로 나가면 환전소가 많을 테고, 거기서 조건이 좋은 환전소를 찾아 돈을 바꾸면 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의 명물인 천문 시계 앞에 몰려든 사람들. 매 시 정각마다 시계 속에서 인형들이 나와 행진하는 방식이라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신양란 작가

그런데 구시가 광장 환전소를 찾았다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코루나(체코 화폐 단위)를 살 때와 팔 때의 차이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여행자가 1유로를 살 때는 28.38코루나를 주어야 하고, 팔 때는 15.01코루나를 받는다고 했다. 거의 배에 달하는 이런 차이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앞서 버스터미널에서는 1유로당 26코루나를 받았는데, 이곳은 1유로당 15.01코루나만 준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환전할 수 없었다. 너무 손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환전 자체를 안 할 수도 없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환전한 금액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떼라’라는 구호를 내걸고 서명을 받던 구시가지 광장의 부스. 화면 오른쪽 두상은 푸틴으로, 사람들이 그의 코를 꼬집어 비틀고 갔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데, 푸틴의 코를 잡아 비틀어도 우크라이나에는 평화가 오지 않고 있다./신양란 작가

우리는 이리저리 환전소를 찾아다니며 내걸어놓은 환율을 비교했다. 마침내 카를대교 근처에서 제일 좋은 조건을 제시한 환전소를 찾았다. 1유로에 28.56코루나를 준다니 매우 반가웠다.

그런데 100유로를 환전하고 나온 남편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아무래도 돈을 잘못 받았는지 너무 적다”고 했다.

무슨 일일까 싶어 영수증을 꼼꼼히 살펴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환율은 밖에 내걸어놓은 대로 계산해주었는데, 수수료로 뭉텅 떼어갔다. 최종 환전에서 받은 돈은 구시가 광장의 시세와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 환전소에서 다른 여행자가 목청을 높이며 따지는 게 보였다. 우리는 말도 안 통하거니와 자신들 수수료가 그렇다고 영수증에 명백하게 적어놨으니 따질 말도 없고 하여 분노를 삼키고 돌아서기로 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프라하의 환전소에 ‘듣보잡’이란 점잖지 못한 수식어를 붙인 것이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1969년 소련이 체코를 침공했을 때, 자유를 부르짖으며 분신자살한 두 대학생(얀 팔라흐와 얀 자이츠)을 기리는 청동 십자가가 바츨라프 광장 바닥에 설치되어 있다. /신양란 작가

성 바츨라프 동상이 세워진 신 시가지 광장. 성 바츨라프는 보헤미아의 군주였으며, 죽은 뒤 성인으로 여겨지는 체코의 영웅이다./신양란 작가
불타바강에 놓인 다리 중에서 제일 유명하고 중요한 다리인 카를대교에는 많은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그 가운데 성 요한 네포무크의 동상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데, 그는 왕비의 고해성사 비밀을 지키려다 불타바강에 던져져 순교했다. 여행자들마다 동상 좌대의 부조를 쓰다듬고 가기 때문에 그 부분만 반들반들 빛난다. /신양란 작가
 프라하의 카테드랄(주교좌 성당)인 성 비투스 성당에는 알폰스 무하의 그림으로 제작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어 여행자들의 관심을 끈다. 체코 출신인 알폰스 무하는 파리에서 활동했으며, 아르누보 양식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신양란 작가
프라하성에서 내려다본 프라하 시내 모습. 붉은색 지붕들이 이루는 나지막한 스카이라인이 고풍스러움을 풍긴다./신양란 작가
유럽에서 자행된 유대인에 대한 가혹한 박해를 짐작할 수 있는 유대인 묘지. 죽어서 묻힐 땅을 허락받지 못한 유대인들이 켜켜이 쌓이듯 매장된 장소이다. 그런 박해를 당했던 그들이 지금 주변 나라에 가하는 냉혹한 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모진 시집살이 한 며느리가 나중에 모진 시어미가 된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된다./신양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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