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일본 반도체 기업 키옥시아(KIOXIA)의 기업공개(IPO)에 찬성하는 뜻을 드러냈다. 키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의 합병을 막으면서 SK하이닉스가 보유한 키옥시아 지분을 기업공개라는 최적의 타이밍에 매각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3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은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개최한 ‘제29회 아시아의 미래’ 포럼에서 기자를 만나 키옥시아의 IPO는 관련 지분을 보유한 SK하이닉스에 “좋은 일”이라며 찬성의 뜻을 드러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8년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전 세계 4위 낸드 플래시 업체인 키옥시아에 약 4조원을 투자하면서 회사 지분을 최대 15% 확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됐다. 낸드 업황이 좋은 상황에서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해 키옥시아의 상장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후 낸드 업황이 침체기에 빠지고 키옥시아가 실적 부진으로 2020년 IPO가 한 차례 무산되면서 투자금은 평가손실이 되어 SK하이닉스의 재무구조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 투자에 대해 평가손실 1조6558억원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약 1조6000억원 상당의 평가이익을 본 것으로 집계했지만, 그 뒤로 평가이익은 지속해서 감소해 2022년부터는 평가손실로 전환하며 영업외손실로 집계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베인캐피탈은 최근 키옥시아 거래은행에 기업공개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내로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게 목표다. 키옥시아 입장에서도 오랜 반도체 다운턴(불황)이 끝나고 업턴(호황)이 온 상황에서 신기술 연구개발과 낸드 생산능력(캐파) 확충을 위한 신규 투자금 유치가 절실한 상황이다.
키옥시아가 상장을 위해 실적을 개선하면서 실제 상장까지 도달하면 SK하이닉스 입장에선 투자금 회수와 함께 키옥시아와 WD가 합쳐진 거대 낸드 회사가 출현하는 것을 막는 일거양득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전 세계 3위 낸드 사업자인 WD와 4위 사업자인 키옥시아가 합병하면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낸드 시장 2위인 SK하이닉스의 시장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는 만큼 SK하이닉스는 그동안 두 회사의 합병에 반대해왔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도 지난해 10월 “회사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키옥시아와 WD 합병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더 좋은 방안이나 새로운 대안이 있다면 충분히 같이 고민하고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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