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 장기화로 국내 패션업계가 휘청이고 있다. 소비 침체와 함께 최근 몇 년간 이어지고 있는 이상고온 현상 등으로 의류 소비는 줄어드는데 재고 자산은 매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재고 효율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불황을 극복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섬, F&F, LF,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국내 주요 패션기업 중 신세계인터내셔날을 제외한 3개 업체 재고자산은 매년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패션업계에서 재고자산은 악성자산으로 평가된다. 재고가 늘수록 관리 비용 지출이 늘고, 변화가 빠른 업계 특성상 유행과 계절이 지난 의류 상품의 가치는 급감하고 이에 대한 처분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이상기후로 인해 기업들이 재고를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기업별로는 한섬이 지난해 역대 재고자산 규모를 경신했다. 2021년 4602억원이었던 한섬의 재고자산 규모는 2022년 5627억원에서 지난해 6105억원까지 불었다. 3년 새 재고자산 규모가 33% 이상 늘어난 것이다.
MLB, 디스커버리 등으로 유명한 F&F 상황도 좋지 않다. F&F 재고자산 규모는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2021년 2422억원이던 재고자산은 2022년 23% 늘어 2974억원을, 지난해에는 15% 늘어 3411억원을 기록했다.
LF는 2022년 재고자산 규모가 12년 만에 사상 최초로 4000억원대를 넘어선 이후 1년 넘게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LF 재고자산 규모는 △2021년 3139억원 △2022년 4451억원 △2023년 4441억원을 기록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효율적인 재고 관리를 통해 2022년 15%에 달했던 재고자산 증가 폭을 지난해 2.5%까지 줄였다.
재고자산은 기업 실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재고 관리 등을 통한 비용 효율화를 꾀한 기업은 수익성이 큰 폭으로 개선됐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모두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하락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과 LF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8.9%, 107.8% 증가한 112억원, 246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한섬은 영업이익이 40.2% 줄어든 325억원, F&F는 12.5% 줄어든 130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에 기업들은 올해 아웃렛 등을 통해 재고자산을 최대한 매출로 전환하고 향수·화장품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수익성 개선 방안 모색에 나서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달 이탈리아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인 브루넬로 쿠치넬리를 출시하고 올해 스페인 화장품인 로에베와 명품 브랜드 더 로우 등을 신규 브랜드로 추가 도입해 선보이고 있다.
LF는 LVMH가 2019년 새롭게 선보인 ‘빠투’, 이탈리아 럭셔리 디자이너 브랜드 ‘포르테포르테’ 등 수입 브랜드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하고 팝업 스토어를 운영한다. 한섬은 시스템(SYSTEM)과 타임(TIME)에 대해 프랑스 파리 진출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패션업계가 다가올 2분기 비수기에 대비해 재고자산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며 “신규 브랜드 확대와 함께 최근 화장품 등 좋은 성과를 내는 사업군에 대한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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