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진실은 가까이 있지 않고, 알아내려고 할수록 훨씬 더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다.
23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영화 ‘설계자’ 시사회에서 영화를 연출한 이요섭 감독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하며 이같이 밝혔다.
‘설계자’는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완벽한 사고사로 조작하는 삼광보안 팀장인 영일(강동원)과 그 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에는 ‘청소부’라는 조직이 거론되는데, 사건을 또 다른 사건으로 덮는 일을 조직적으로 수행하는 단체를 말한다.
삼광보안이 업무를 수행할 때마다 영일을 포함한 팀원들은 ‘청소부’가 개입해 일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청소부는 영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 감독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알고 싶은 게 있는데, 거기에 도달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무기력함을 느끼거나 분노를 느낀다. 수많은 매체가 있고 그 정보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데, 진실을 찾고자 하는 주인공의 혼란과 혼돈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남을 의심할 수도 있고, 믿음이 사라질 수도 있다. 이건 우리가 모두 겪는 일이기도 하다”라며 “관객들과 설계자들 사이에 공감할 수 있는 하나의 여지로 청소부라는 피상적인 존재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이날 언론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강동원은 “청소부는 외계인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시나리오를 읽고 오랜만에 신선한 영화를 찍어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라며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꼈던 점을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진실을 파헤치다가 표류하는 영화
‘설계자’는 무엇이 진실인지 파헤치는 영화가 아니라 진실과 거짓이 똑같은 얼굴을 하고 관객에게 말을 거는 영화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혼돈을 느끼는 영일의 시점은 곧 관객의 시점이기도 하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사건과 또 다른 사건이 중첩되며 전개된다. 영일이 의뢰받은 일을 그럴듯한 사고사로 조작하려고 할 때마다 의문의 사고가 발생한다. 영일은 그 사고가 ‘청소부의 짓’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사건이 또 다른 사건으로 재편되는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영일과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청소부의 프락치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다가 그 의심이 다시 해소되는 과정에서의 연결고리가 허약하다는 뜻이다. 결국 스크린 밖에 있는 관객들은 심드렁하고, 스크린 안에 있는 인물들만 진지하고, 치열하다.
영화는 마지막에 영일을 수사하는 경찰이 청소부일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기며 끝난다. 이 같은 연출은 짜릿한 반전이 아닌 허무한 반전에 가깝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청소부일 수도 있다는 단서나 맥락이 영화에서 입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일 이외의 캐릭터들도 전반적으로 부유하는 느낌이다. 주체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시종일관 관찰당하다가 삭제된다.
강동원이 주연으로 활약한 ‘설계자’는 29일 일반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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