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주(17일) 기준 총 700조3419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지난달 말(698조30억원)과 비교했을 때 2조3400억원가량 늘어난 규모입니다. 5대 은행의 3월 말 가계대출 잔액 합계가 693조5684억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한 달 반 사이에 7조원 가까이 급증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계대출 증가세는 은행권, 나아가 전체 금융권을 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보험·저축은행·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의 지난달 가계대출은 4조1000억원 증가했는데, 이는 작년 10월(6조2000억원 증가) 이후 가장 큰 규모입니다. 지난 2월과 3월 각각 1조9000억원, 4조9000억원 가계대출 잔액이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늘어난 셈이죠.
가계대출이 급증하면서 대출 금리는 자연스레 오르고 있습니다. 20일 5대 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와 연동된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는 평균 연 4.42~5.77%로 나타났습니다. 지난달 말의 연 4.37~5.69%과 비교하면 20일 만에 5bp(1bp=0.01%포인트), 8bp 오른 것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변동형 주담대 금리와 연동된 지표인 코픽스는 5개월째 내리막을 걷고 있습니다. 코픽스는 은행이 조달한 자금에 대한 가중평균금리를 뜻하는데요, 은행이 취급한 예·적금, 은행채 등 수신상품 금리 추세를 반영해 움직입니다.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가 하락했다는 것은 곧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할 때 전월보다 적은 이자를 냈다는 뜻입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연 4.00%로 고점을 찍은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같은해 12월 16bp 하락(연 3.84%)한 것을 시작으로 5개월 연속 하락했습니다. 올해 1월에는 전월 대비 18bp 낮은 연 3.66%를 기록했고 2월에는 4bp 더 하락해 연 3.62%를 기록했죠. 3월과 4월 코픽스도 각각 전월 대비 3bp, 5bp 하락한 연 3.59%, 연 3.54%로 나타났습니다.
은행이 대규모로 자금을 조달하는 창구 중 하나인 은행채 금리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연 3.933%였던 은행채 5년물(무보증·AAA) 금리는 지난 21일 3.774%로 15.9bp 내렸습니다. 은행채 5년물 금리는 코픽스와 함께 주담대 금리와 연동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로 꼽힙니다. 신용대출에 영향을 미치는 지표인 은행채 1년물(무보증·AAA) 금리도 같은 기간 연 3.69%에서 연 3.623%로 6.7bp 내렸습니다.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할 때는 저렴한 이자를 내면서도, 금융소비자들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더 높은 이율을 적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은행채 금리나 코픽스처럼 특정 수치와 연동해서 움직이는 금리 외에 은행들이 개별적으로 설정하는 가산금리를 높여 최종 상품금리를 높인 것이죠.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이자 장사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분기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총 5조3000억원 규모로 작년 1분기(7조원)와 비교했을 때 24.1% 감소했습니다. 은행들이 이자 수익을 늘리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죠.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영향으로 은행들의 영업 외 손익이 큰 폭으로 줄어든 것도 이런 추측의 근거 입니다.
그러나 은행권에서는 억울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올해 초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제성장률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만큼 급격한 가계대출 증가가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가계대출을 조이기 위해서는 상품금리를 높여 수요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죠.
이유야 어떻든 금융소비자가 체감하는 금리가 최근 상승세에 올라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기준금리가 연 3.5%에 달하는데 경기도 좋지 않은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면서도 국민들의 시름을 덜어줄 수 있는 운영의 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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