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이 손실흡수능력 확대를 위해 쌓는 ‘대손충당금’ 규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을 우려한 금융당국이 지속적으로 충당금 확대를 압박해 온 결과다. 은행들은 하반기 새로운 충당금 확충 제도가 시행되는 한편 부동산 PF 자금 지원도 맞물려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연간 대손충당금 적립액은 2년 만에 3.5배 이상 커졌다. 2021년 1조5009억원이었던 연간 적립액은 2022년 3조2652억원에서 지난해 5조6872억원까지 증가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2021년보다 4조원 넘는 충당금을 지난해 더 쌓은 것이다.
매년 충당금 적립액 규모가 크게 확대된 배경에는 금융당국 정책 기조가 자리한다. 당국은 지속해서 손실흡수능력 확충을 강조하고 있다. 빈번히 발생하는 금융사고에 더해 최근 부동산 PF 부실 가능성까지 가세하면서 은행권에 불안정성이 높아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문제는 충당금 부담에 은행들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충당금은 회계상 순이익에서 자금을 빼내 마련하는 만큼 충당금이 커지면 자연스레 순이익이 줄어든다. 또한 순이익이 줄면 배당금 등 주주환원에 활용할 자본 여력도 줄어 주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충당금을 많이 쌓을수록 수익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총자산이익률(ROA)이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아지는 등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올해 1분기에도 5대 시중은행은 충당금 5908억원을 쌓았다. 이는 작년 동기 1조141억원보다 적은 수준이다. 하지만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자율배상에 따른 충당부채(1조6650억원)를 포함하면 총 2조2558억원에 달해 사실상 은행권의 비용 부담이 더 커졌다고 금융권은 보고 있다. 한 개 분기에 지난해 연간 충당금 절반 수준을 부담한 것이다.
대손충당금 적립 누적 규모는 1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1분기 기준 5대 시중은행이 쌓아둔 대손충당금은 총 11조163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별로 보면 NH농협이 3조971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KB국민 2조6122억원 △우리 1조8866억원 △신한 1조8034억원 △하나 1조7638억원 등 순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반기에는 충당금을 확충할 추가적인 제도 시행과 부동산 PF 자금 지원까지 예정돼 은행권으로서는 부담이 더 커질 전망이다. 이미 금융당국은 충당금 적립 수준이 낮은 은행에 추가 적립을 요구할 수 있는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에 더불어 이달까지 경기대응완충자본 적립 수준도 1%로 높이기로 했다. 은행들은 추가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하반기 ‘스트레스완충자본’도 도입한다. 금융감독원은 스트레스완충자본 시범 도입을 위해 지난해 6월 기준 스트레스테스트를 진행했고, 결과를 은행에 통보한 상태다. 금융위원회는 시범 도입 결과 등을 참고해 올해 9~10월에 은행업 감독규정과 시행세칙 개정 작업을 마친다는 목표다. 스트레스완충자본이란 금융당국이 미리 진행한 스트레스테스트 결과에 따라 필요시 추가 자본을 쌓도록 하는 제도다.
하반기 예정된 조 단위 부동산 PF 자금 지원은 은행 부담을 더 키울 전망이다. 금융권은 PF 사업장의 사업성이 단기간 회복되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앞서 금융당국이 PF 정상화를 위한 투자금에 대해 건전성 분류를 ‘정상’으로 해주는 인센티브 방안을 내놨지만 은행권에선 장기적으로 충당금을 더 쌓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수익이 늘어날 요인은 제한돼 있는데 충당금만 계속 쌓고 있는 실정”이라며 “올해 말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서 추가 자금 확보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규모 충당금을 쌓게 되면 은행 실적은 악화할 수밖에 없고 결국 긴축경영으로 이어진다”며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줄어들거나 배당과 같은 주주환원 감소로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는 등 경영 환경에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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